1989년 대구문화재자료(현, 대구광역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독무재는 벼슬도 마다하고 향리(鄕里)에 은거하며 후진 양성에 전념한 하시찬(夏時贊; 1750∼1828)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문인(門人)과 유림(儒林)들이 힘을 모아 건립한 건물이다.
하시찬 선생은 조선 영조 26년(1750)에 대구시 수성구에서 태어났으며, 지금의 독무재가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50m 떨어진 독무암루에서 살다가, 순조 28년(1828)에 돌아가셨다. 당대의 석학이던 이경호와 송성담 밑에서 수학하였는데, 예학에 밝아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명성을 듣고 지방 곳곳에서 젊은이들이 모여 배우기를 청해 독무재에서는 언제나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다.
독무재는 원래 동구 효목동 경북주유소 부근 경부선 철로 변에 있었으나 대구시 3차 우회도로가 개설되면서 1968년 4월에 지금의 자리로 이건(移建)되었다. 이건 시 독무재 서쪽에 경덕사(景德祠)와 장판각을 새로 지었다
장판각에는 『팔례절요(八禮節要)』와 『열암문집(悅菴文集)』 판각을 보관하고 있고, 경덕사에서는 매년 3월 상정일(上丁日 : 매월 첫째 丁日)에 각지의 유림들이 모여 춘향(春享)을 지내고 있다.
독무재 경내는 사당(祠堂)인 경덕사와 강당인 독무재가 병렬로 배치된 좌묘우학(左廟右學)의 배치로 되어있다. 강학(講學)기능을 가진 독무재는 정면6칸, 측면1칸 반 규모로 가운데 2칸 마루를 중심으로 좌 · 우에 방이 있는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독무재는 건축양식적인 면에서는 대구시내 고건축 중에서도 보기 드문 예이며, 정신적인 면에서는 대구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조선유학자의 한 분인 하시찬선생의 정신과 학덕을 추모하는 기념적 건물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