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3.71m. 비로암의 중심 건물인 대적광전의 앞뜰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나직한 흙단 위에 2층의 받침을 세우고 그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전형적신 신라 석탑이다. 1967년에 해체 복원 공사를 하였다.
아래층 받침돌은 4장의 길고 큰 돌로 구성되었는데, 1장의 돌로 이루어진 각 면에는 바닥돌과 받침돌 면석(面石), 그리고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기둥이 새겨져 있다. 아래층 받침돌의 덮개돌은 네모난 4장의 널돌을 붙여서 덮었으며, 윗면에는 위아래로 굴곡을 만들어 마치 별개의 널돌을 굄돌로 끼운 듯이 표현하였다. 윗층 받침돌의 면석은 4장의 널돌로 조성하였으며,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기둥을 돋을새김하였다. 윗층 받침돌의 덮개돌은 2장의 널돌로 덮었으며, 윗면에는 아래층 받침돌과 같은 모습으로 위아래를 굴곡으로 깎아 굄돌을 마련하여 몸돌을 받치게 하였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조성하였다. 몸돌의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겼으며, 위로 올라가면서 약간의 체감(遞減)을 나타내도록 하였다. 지붕돌은 윗면 가운데 부분에 굄을 새겼고, 추녀는 전각(轉角)까지 직선을 이루게 하였으며, 아랫면에는 4단의 받침을 새기고서 가장자리에 가는 홈을 파서 돌렸다.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 위에 복발(覆鉢)·보주(寶珠) 등이 남아 있다.
이 석탑은 규모는 작지만 각 부분의 비례가 신라 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따른 아름다운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1층 몸돌 아래 부분과 아래층 받침돌의 덮개돌에 굄돌을 별개의 돌로 끼워넣듯이 조각한 수법은 특이한 모습으로, 대체로 신라 하대에 나타나는 양식이다.
이 석탑은 1966년에 사리구(舍利具)가 도난되었지만 다행히 중요한 유물만은 수습되었다. 사리를 담은 납석제(蠟石製) 항아리에 글자가 새겨져 있어서, 이 석탑이 863년(경문왕 3)에 민애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