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대명동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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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대명동 유적 고분군 전경
대구 대명동 유적 고분군 전경
선사문화
유적
대구광역시 남구에 있었던 삼국시대 장방형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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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구광역시 남구에 있었던 삼국시대 장방형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본래 신지동(新池洞)이었으나 행정구역의 명칭변경으로 대명동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는 시가지가 되어 소멸되고 말았으나, 1940년 초까지도 대구분지 남쪽의 나직한 구릉 위에 40기 이상의 고분이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

1937년과 1938년 시가지 확장으로 소멸위기에 처한 고분군 중 5기를 조사하였다. 조사고분도 이미 도굴된 것이어서, 구조적인 자료와 극히 일부의 유물만을 확인하는데 그쳤다.

내용

당시 조사된 5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사 전의 외형은 봉분이 많이 유실되어 바닥 지름이 남북 25m, 동서 15m밖에 되지 않았으며, 높이도 거의 없는 타원형의 봉분이었다. 내부구조는 석축벽(石築壁)을 쌓아서 연결시킨 으뜸방과 딸린방의 장방형돌방으로서, 돌방은 봉분의 중앙부에 남북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으뜸방 북쪽에 직각방향으로 5m 간격을 두고 별개의 장방형 돌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으뜸방은 규모가 길이 약 4m, 너비 약 1.5m, 높이 1.5m이다. 바닥에는 자갈돌을 깔았고, 돌방 벽은 할석을 쌓아올렸으며, 천장에는 큼직한 괴석 3개를 덮었다. 딸린방은 길이 2.7m, 너비 1.2m이다. 별개의 돌방은 길이 2.7m, 너비 1.3m, 높이 2.4m이다. 돌방은 모두 지반을 파서 구덩식으로 구축하였으며, 으뜸방 외의 딸린방, 별개의 돌방도 할석으로 쌓아올렸다.

이 고분에서 주목되는 것은 돌방을 덮고 있는 봉분이 경주의 돌무지덧널무덤에서처럼 하천석을 덮은 위에 봉토한 점이다. 유물은 도굴된 뒤여서 거의 없었다. 다만, 딸린방 바닥 전면에 토기조각이 깔려 있고, 으뜸방 바닥에서 금제귀걸이의 조각이 발견되었을 뿐이다.

북구 제2호분에서 서쪽으로 약 7m 간격을 둔 지점에 위치해 있다. 봉분은 심하게 깎여나가 동서 12m, 남북 14m 정도이고, 높이도 낮다.

내부구조는 구덩식 장방형돌방으로서, 돌방은 봉분의 중앙부에 남에서 동으로 25°치우친 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돌방의 규모는 길이 약 4m, 너비 1.65m, 높이 0.8m이다. 벽은 하천석으로 쌓아올렸으며, 하천석 사이에 생긴 틈에는 진흙이 채워져 있다. 돌방 천장은 판석모양의 큰 돌 4개를 걸쳐 덮었으며, 바닥은 자갈을 얇게 깔았다.

유물은 돌방 양끝이 도굴당해 중앙부에 함몰되었던 개석 아래서만 일부 수습되었다. 수습유물은 금제귀걸이·은제고리긴칼〔銀製鐶頭大刀〕·철심도은심엽대금구편(鐵心鍍銀心葉帶金具片)·철제살촉·철제낫〔鐵鎌〕·적색토기편·경질토기편 등이 있다.

북구 제7호분에서 남쪽으로 약 11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 또한 봉토가 많이 깎여나가 지름은 13m 정도이고, 높이는 북편에서는 높이가 거의 없고 경사면 아래쪽인 남쪽에서 1.5m 정도였다.

내부구조는 구덩식장방형돌방으로서, 돌방은 봉분 중앙부에 지반을 파서 남에서 동으로 38°치우친 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돌방의 규모는 길이 3.5m, 너비 0. 8m, 높이 0.7m이다. 바닥은 자갈을 얇게 깔고, 천장은 5개의 큼직한 돌로 덮었다.

유물은 교란되어 굽다리접시·굽다리목항아리·철제말재갈·철제손칼 등의 조각만이 발견되었다.

북구릉의 고분군과는 남쪽으로 800m 간격을 두고 조성된 고분군 중의 하나이다. 외형은 봉분이 많이 깎여져서 바닥의 넓이가 동서 7m, 남북 12.5m, 높이 2.3m이다.

내부구조는 구덩식장방형돌방으로서, 돌방은 봉분의 중앙부에 지반을 파고 북에서 서쪽으로 21°치우친 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돌방의 규모는 길이 3.35m, 너비 0.85m, 높이 0.8m이다. 천장은 6개의 큼직한 판석모양의 돌을 걸쳐 덮고, 바닥은 지반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벽은 할석으로 쌓았고 할석 사이는 진흙을 채웠다.

유물은 도굴되어 굽다리접시·목항아리·잔·철제말재갈·손칼·꺾쇠 등의 조각만이 발견되었다.

남구릉 정상 가까운 곳에 있는 고분이다. 봉분 크기는 지름 약 15m, 높이 약 3m이다. 동북쪽 바닥에 큼직한 하천석이 한 줄 돌려져 있다.

돌방은 구덩식으로서 봉분 중앙에 남북을 향해 놓여 있었다. 돌방 규모는 길이 약 3.5m, 높이 1.3m, 너비 1.25m이다. 돌방 주벽은 하천석으로 쌓아올렸으며, 천장은 판석 몇 개로 덮고, 바닥은 지반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유물은 도굴되어 남쪽 벽 가까이에서 목항아리 및 굽다리접시조각과 철제꺾쇠·말재갈·손칼조각이 발견되었을 뿐이다.

참고문헌

「大邱府附近に於ける古墳の調査」(齋藤忠, 『昭和十三年度古蹟調査報告』, 朝鮮古蹟硏究會, 1940)
집필자
윤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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