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군은 대구광역시 북부에 위치한 군으로, 북쪽과 동쪽, 서쪽은 경상북도 의성군·영천시·구미시와 접한다. 삼한시대 진한의 12개 소국 중 하나였던 여담국을 군위 지역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8°24'∼128°53', 북위 36°00'∼36°19'이다. 2023년 7월 경상북도에서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614.25㎢, 인구는 2만 2463명이다. 행정구역은 1개 읍, 7개 면에, 하위 행정 단위로 180개 행정리, 92개 법정리가 있다. 군위군청은 군위읍 동부리에 있다.
군위군은 대구광역시 북부에 위치하여 북쪽과 동쪽, 서쪽은 경상북도 의성군 · 영천시 · 구미시와 접한다. 삼한시대 진한(辰韓)의 12개 소국(小國) 중 하나였던 여담국(如湛國)을 군위에 비정하기도 한다.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8°24'∼128°53', 북위 36°00'∼36°19'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614.25㎢이고, 인구는 2만 2463명이다. 2023년 7월 1일 경상북도에서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은 1개 읍[군위읍], 7개 면[소보면 · 효령면 · 우보면 · 의흥면 · 부계면 · 산성면 · 삼국유사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위 행정 단위로 182개 행정리, 92개 법정리가 있다. 군위군청은 군위읍 동부리에 있다
군 남단에 자리한 팔공산(八公山: 1,193m)이 대구광역시 동구와 경계를 이루며, 동북쪽으로 뻗은 팔공산 지맥(支脈)이 경상북도의 청송군 · 영천시와의 경계를 따라 분수령을 이룬다. 동부는 선암산(船巖山: 879m) · 조림산(鳥林山: 638m) · 매봉[800m] · 방가산(方可山: 756m) · 화산(華山: 828m) 등 해발고도 600∼800m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부는 베틀산[369m] · 적라산(赤羅山: 252m) · 응봉산(鷹峰山: 279m) 등 200∼300m, 북부는 100∼200m의 낮은 구릉지로 되어 있다.
삼국유사면 학암리에서 발원하여 군위군 중앙부를 관통하는 위천(渭川)은 의흥면과 우보면, 군위읍, 소보면을 지나 북서쪽으로 자유 곡류하며 경상북도 의성군을 거쳐 낙동강 본류로 흘러든다. 팔공산 북사면에서 발원해 북류하는 남천(南川)은 효령면 병수리에서 위천과 합류하며, 구천(九川)은 우보면에서 합류한다. 청화산(靑華山: 701m)에서 발원한 곡정천(谷亭川)은 소보면에서 위천과 합류한다. 하천 양안에는 농경에 적합한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하였다.
군위군은 동으로 태백산맥의 여맥인 낙동정맥과 서북으로 소백산맥으로 둘러싸인 낙동강 유역의 분지로 내륙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한서의 차가 크며, 강수량은 적은 편이다. 2021년 기준 연평균기온은 12.6℃로, 1월 평균기온 –2.5℃, 8월 평균기온 24.4℃이다. 연강수량은 1,257.4㎜인데, 지난 5년간 최저 605.3㎜에서 최고 1,260.9㎜로 편차가 크다.
군위 지역의 초기 역사에 대해서는 청동기시대 유적 · 유물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추정하기 어렵다. 다만 삼한시대 진한(辰韓)의 12개 소국 중 하나였던 여담국을 군위 지역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여담국은 진한의 부족국가 연맹체의 일원으로서 맹주국과 결속 관계를 성립한 채 토착 세력의 기반을 유지하다 3세기 이후 신라에 점령되었다. 757년(경덕왕 16) 군위현(軍威縣)과 효령현(孝靈縣)으로 개명되고 숭선군(嵩善郡)[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의 속현(屬縣)이 되었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 군현의 이합에 따라 다른 군현에 속해 있다가, 1390년(공양왕 2) 군위현과 의흥군에 감무(監務)가 파견되면서 비로소 독립 행정 단위로 구성되었다.
조선 전기인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개편 때 의흥군이 의흥현으로 격하되었으며, 군위현과 의흥현에 현감이 파견되었다. 1895년(고종 32)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23부제가 시행되면서 두 지역 모두 군이 되어 대구부에 속하였다. 이어 다음 해에 13도제가 실시되자 군위군과 의흥군은 각각 4등군으로서 경상북도의 관할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의흥군이 군위군에 통합되었다. 1996년 3월 13일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1개 읍[군위읍], 7개 면[소보면 · 효령면 · 우보면 · 의흥면 · 부계면 · 산성면 · 삼국유사면]에 182개 행정리, 92개 법정리를를 관할하게 되었다. 군위군은 2023년 7월 1일 자로 경상북도에서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었다.
군위 지역은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에 왜적에 맞선 의병 활동과 항일 의병 투쟁이 활발했던 곳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위 지역 출신인 장사진(張士珍: ?∽1592), 이영남(李榮男), 홍위(洪瑋), 홍억제(洪億濟) 등이 의병을 크게 일으켜 왜적 토벌에 큰 공을 세웠다. 일제강점기에는 군위 지역 주민들도 항일 투쟁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이현섭(李鉉燮: 1844∽1910)은 한일합병의 비보를 듣고 자결하는 등 강한 저항 의지를 보였다. 또 1919년 3월 25일 의흥장날에는 수백 명이 모여 만세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군위군에는 고려시대 이전의 불교문화 유산과 함께 조선시대 서원과 향교 등 유교 문화유산이 많고, 그 밖에 문화유적이 다수 분포하고 있다.
불교문화 유산으로 1962년 12월 20일 국보로 지정된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軍威 阿彌陀如來三尊 石窟)은 군위군 팔공산 절벽의 자연 동굴에 만들어진 통일신라 초기의 석굴 사원이다. 이 석굴에는 700년경에 만들어진 삼존 석불이 모셔져 있다. 가운데 본존불은 사각형의 대좌(臺座) 위에 양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위로 향한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좌우의 보살상은 날씬한 몸매에 어울리는 신체 비례와 목 · 허리 · 다리 세 부분을 비틀고 있는 모습에서 새롭게 수용된 중국 당나라 양식을 보여 준다.
불교 사찰로는 인각사(麟角寺), 지보사(持寶寺), 법주사(法住寺), 압곡사(鴨谷寺), 수태사(水泰寺), 신흥사(新興寺), 석굴암 등이 유명하다.
군위군 화산에 위치한 군위 인각사지(軍威 麟角寺址)는 1992년 5월 28일 사적으로 지정된 절터이다. 인각사는 642년(선덕여왕 11)에 창건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284년(충렬왕 10) 인각사를 수리한 뒤 보각국사 일연(一然: 1206∽1289)을 주지로 임명하였는데, 일연은 입적할 때까지 5년간 이곳에 머물면서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완성하였다. 이후 조선시대를 지나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웅전 등이 사라졌으며, 현재는 신축한 대웅전과 조사당, 요사채 2동, 비각 1동이 남아 있다. 인각사와 관련한 국가유산 중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軍威 麟角寺 普覺國師塔 및 碑)는 일연의 사리탑과 그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군위 인각사 출토 공양구 일괄(軍威 麟角寺 出土 供養具 一括)[보물]은 인각사 1호 건물지 동쪽 유구(遺構)에서 출토된 공양구(供養具)들이다. 통일신라부터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금동 사자형 병향로(柄香爐), 향합(香盒), 정병(淨甁), 청동 북[金鼓] 등 금속 공예품과 청자와 같은 도자류 등 총 18점이다. 그중 불교에서 천상의 새를 상징하는 금동가릉빈가상(金銅迦陵頻伽像)은 그동안 출토 사례가 거의 없어 도상적(圖像的)으로 희귀하며, 청동 발과 청동 뚜껑[접시] 역시 통일신라부터 유행한 전형적인 기형(器形)으로서 당대의 공예 기술을 보여 준다.
군위 인각사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및 목조대좌(軍威 麟角寺 石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및 木造臺座)는 조선 후기 불상으로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대구광역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는 군위삼존석굴모전석탑(軍威三尊石窟模塼石塔)은 단층 기단에 화강 석재를 길고 얇게 장방형으로 잘라 네모 모양의 단층 탑신부를 형성하고 있으며, 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부는 원래 3층이었으나 해방 후 도괴되었다가 이후 단층으로 개축되었다.
유교 유산으로는 군위읍 동부리의 군위향교(軍威鄕校)[대구광역시 문화유산자료, 1987년 지정], 의흥면 읍내리의 의흥향교대성전(義興鄕校大成殿)[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 1985년 지정], 부계면의 군위대율리대청(軍威大栗里大廳)[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 1991년 지정]을 비롯해 군위읍 외량리에 송호서원, 내량리에 양천서원, 대북리에 남계서원 · 북산서원, 우보면 달산리에 봉강서원, 효령면 장군리에 제동서원, 부계면 남산리에 양산서원 · 문양서원 등의 서원이 있다.
군위향교는 1407년(태종 7)에 동부리 마정산(馬頂山: 402m)에 처음 지어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가 1701년(숙종 27)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어졌다. 제일 높은 곳에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을 두고 그 앞으로 공부하는 건물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서로 마주한다. 의흥향교대성전에는 공자(孔子)를 비롯한 그 제자와 우리나라 성현 27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조선시대 유적인 장사진의병장유적(張士珍義兵將遺蹟)[대구광역시 기념물]은 임진왜란 당시 경상도의 대표적 의병장인 장사진을 기리기 위한 사당인 오천리 충렬사와 병수리의 고리비를 포함한다. 장사진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10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군위, 인동 지역의 왜적을 공격하여 큰 공을 거두었으나 전사하였다.
조선 후기 유적 중 대구광역시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군위 남천고택(軍威 南川古宅)은 군내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으로, 부림 홍씨(缶林 洪氏)의 집성촌인 한밤마을[부계면 대율리]에 있다. 입향조인 고려 문하사인(門下舍人) 홍로(洪魯: 1366∽1392)가 군위군에 정착하면서 그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았다. 남천고택은 홍로의 10세손 홍우태의 살림집이었다.
칠탄숙강당(七灘塾講堂)[대구광역시 문화유산자료]은 서담(西潭) 홍위(洪瑋: 1559∽1624)가 스승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의 학문을 이으려고 1629년(인조 7)에 지은 글방이다. 본관이 남양(南陽)인 홍위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다가 광해군(光海君: 1575~1641) 때 관직에서 물러난 후 후배들을 길러 내기 위하여 힘쓴 인물이다. 칠탄숙강당은 보기 드물게 큰 규모의 글방으로, 대청에 목판이나 책판을 보관하였던 장판각(藏板閣)을 갖춘 점, 문틀의 구성 수법이 특이한 점 등에서 조선 후기 건축 및 지방 교육 시설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조선시대에 설립된 교육기관으로 군위향교(軍威鄕校) · 의흥향교(義興鄕校) · 효령향교가 있었으나, 현재는 군위읍 동부리의 군위향교와 의흥면 읍내리의 의흥향교만 남아 있다. 서원으로는 남계정사(南溪精舍)라고 부르던 남계서원(南溪書院)이 1868년(고종 5) 전국 서원 정리 때 서당으로 격하되었고, 송호서원(宋湖書院)은 철폐되었다.
군위군에는 2025년 6월 1일 기준 초등학교 2개, 중학교 2개, 고등학교 1개가 있다. 해방 후부터 1950년대까지 군위중학교, 부계중학교, 의흥중학교, 군위고등학교, 군위정보고등학교 5개가 설립되었으며,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효령중학교와 효령고등학교 2개가 개교하였다. 그러나 농촌 인구의 감소에 따라 소보중학교는 2014년에, 군위정보고등학교는 2017년에 폐교하였으며, 효령고등학교는 2021년 2월 졸업생을 끝으로 휴교 중이다.
문화시설로는 공공도서관 1개소와 삼국유사교육문화회관이 있다. 대구광역시교육청삼국유사군위도서관은 1975년 군위군립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다가 2023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471개 좌석과 8만 2032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삼국유사교육문화회관은 2003년 군위읍 동부리에 개관한 군위국민체육센터와 2007년 개관한 문화예술회관[여성회관, 청소년 문화의 집] 등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공연장과 편의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군위 생활문화센터는 옛 군위중학교 건물 일부를 이용하여 리모델링한 문화시설로, 지역 주민이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맞은편에 자리한 삼국유사문화공간 역시 지역 주민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삼국유사테마파크는 의흥면 이지리에 조성된 문화공간으로, 『삼국유사』를 주제로 한 전시 주제관과 『삼국유사』와 관련한 교육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교육 · 연구 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군위읍에는 ‘박시[搏歲]놀이’라는 민속놀이가 전해 내려온다. 수리 시설이 부족했던 시절 보(洑)를 만들어 놓고 물 대는 순서를 정하기 위한 놀이로, 농한기인 정월에 열렸다. 참가자들은 팔짱을 끼고 상대편을 밀어내며 승부를 가르며, 이때 힘겨루기를 벌이는 장사(壯士)를 ‘박시’라 부르고, 대표로 승부를 겨루는 사람을 ‘머리꾼’이라 하였다.
의흥면에는 ‘지애밟기’라는 부녀자들의 놀이가 있는데, 기와밟기라고도 하며 음력 8월 16일 밤에 논다. 아랫마을과 윗마을의 여인들이 노래를 부르며 각각 자기 진지로 집결하여 일렬로 등을 굽히면 그 위를 기와장이가 막대기를 잡고 양편의 부축을 받으면서 밟는다. 양편의 기와장이가 대결하여 상대 기와장이를 땅에 떨어뜨리거나 막대기를 빼앗으면 이기는 놀이다.
군위 삼장군제는 효령면 장군리에서 매년 단오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이다. 장군리 서쪽 삼정산(三井山: 190m) 정상에는 신라 김유신(金庾信: 595∽673)과 당나라 소정방(蘇定方: 592∽667), 이무(李茂)를 모시는 삼장군당(三將軍堂)이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당나라에 청병(請兵)을 하였는데, 당시 원군(援軍)의 대장이 소정방이었고, 부장은 이무였다. 나당연합군으로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룬 후 세 장군은 처음 만났던 효령의 장군봉에 올라, 마을 사람들에게 삼국통일이 되었으니 안심하고 살라고 말한 뒤 떠났다.
그런데 고려 후기 어느 때부터인지 장군봉 정상 부근에 접근하는 사람이 변을 당하는 사건이 자주 일어났으며, 이는 세 장군이 삼국을 통일하여 백성들을 편안히 살게 해 주었는데도 백성들이 고마움을 모르고 제사도 올리지 않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이에 이 마을에 살던 사공씨(司空氏)가 나라에 상소하여 삼장군당을 짓고, 매년 오월 단오에 관민이 합심하여 제사를 올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군위군 지역에는 지명유래담과 효자 설화, 역사적 인물에 관한 설화가 많이 전한다. 그중 「호랑이를 잡은 효자설화」는 고려 때의 이야기이다. 주1이 속출했던 이 지역에서 백성을 위해 호랑이를 잡으려던 한 유공신(柳公信)이 오히려 죽음을 당하자, 그 아들 누백이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잠든 호랑이를 잡고 그 자리에 묘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시작하였다. 하루는 누백의 꿈에 아버지 유공신이 나타나 시를 읊어 주었는데, 이후 누백이 응시한 과거의 과제(科題)가 그 시의 한 구절이어서 누백은 장원 급제를 했다는 이야기이다.
「호랑이로 변한 효자설화」도 있다. 부계면 대율동에 효성이 지극한 효자가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모두 홍효자라고 불렀다. 어느 해 아버지가 이름 모를 병에 걸렸고, 아버지의 병이 나으려면 황구(黃狗)의 신장 1,000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홍효자는 팔공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려 산신령에게 호랑이로 변하는 비결과 주문이 적힌 책을 얻었다. 밤마다 책을 보고 주문을 외운 뒤 호랑이로 변해 개의 신장을 구해 왔는데, 이를 본 부인이 남편이 호랑이로 변하지 못하도록 책을 불태워 버렸다. 새벽에 집으로 돌아온 홍효자는 책이 사라져 사람이 되지 못하고 호랑이가 된 채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돌아가곤 했는데, 사람들은 이를 홍범이라고 불렀다.
그 밖에도 「퇴계설화」, 「열녀설화」와 아기장수형 설화가 전하는데, 아기장수형 설화의 자취로 불행하게 죽은 아기의 원한을 풀기 위해 세워 둔 비석이 군위읍에 남아 있다.
지역에 구전되는 민요는 노동요가 주류를 이룬다. 농업노동요 중에서 「모내기 노래」와 「논매기 노래」는 비슷하게 많이 불린다. 「논매기 노래」로는 집단 유희요인 「치야칭칭 나네」가 사용되기도 한다. 산악 일대에서 나무할 때 부르는 남자들의 신세 탄식요인 「어사용」도 있는데 「어사령」이라고도 한다. 여성 노동요도 많이 전해지는데, 「밭매는 노래」는 작업 과정의 괴로움을 말하고 이어서 신세 한탄이나 시집살이의 고됨을 노래한다.
길쌈노동요 중 「삼삼기 노래」는 청도, 밀양까지 나갈 수 있을 만큼 긴 삼가락을 무릎에다 비벼 삼을 삼는 과정과, 옷을 해 주겠다는 것이 기뻐서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른다는 여인네들의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베를 짤 때 부르는 「베틀 노래」의 사설은 보편적인 베틀 놓기, 베짜기, 남편 부음 듣기 등으로 구성된다. 이 밖에도 동요와 유희요 등이 전하고, 「화전가」와 「수심가」, 「쌍금쌍금 쌍가락지」, 「화투노래」 등 여성들의 노래가 많이 전해지는데, 사설의 내용이 풍부하고 길이가 긴 것이 특징이다.
군위군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농림어업 종사자 비율이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 서비스업 종사자 비율보다 높은, 전형적인 농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보였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부터 농림어업 종사자 수는 꾸준히 감소하고, 도소매업 · 운수업 · 복지 서비스업 등 3차산업 종사자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총 경지 면적도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추세이며, 밭농사가 논농사보다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위천 유역에 위치한 군위읍, 소보면, 효령면, 우보면, 의흥면 등지 평야지대에서는 쌀 · 보리와 같은 주곡을 주로 생산하며, 백학저수지에서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주요 농산물은 마늘 · 양파 · 사과이며, 빛깔이 곱고 당도가 높은 군위사과는 맛이 좋다고 이름났다. 사과 이외에도 삼국유사면에 있는 화산 정상의 비탈길에서 재배되는 고랭지채소와 소보면 달산리 청화산 남쪽 기슭의 쇠점삼밭[鐵店蔘田]에서 재배되는 인삼, 식용 마 등이 유명하다.
특산물로는 군위장터 대장간에서 생산되는 호미 · 괭이 · 낫 · 쇠스랑 · 칼 등이 있는데, 모두 날이 얇아 사용할 때 힘이 별로 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우보면 나호리 진박골에서 나는 의흥종 왕골은 줄기가 가늘고 부드러우며 광택이 있고, 껍질을 가늘게 쪼갤 수 있어 돗자리와 꽃방석, 손가방 등의 제조에 사용된다.
군위군에는 1991∽1992년에 조성된 군위농공단지와 효령농공단지가 있다. 군위농공단지는 조립금속, 전자기계, 컴퓨터 관련 기업들이 입주해 있으며, 효령농공단지는 전자부품 공단으로 조성되어 구미시 전자공단과 연계되어 있다.
전통 시대 지역의 상업 활동은 5일마다 열리는 정기시장[오일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895년(고종 32)경까지 군내의 시장은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으며, 1920년 후반에 산성장(山城場)과 학성장(鶴城場)이 새로 개설되었다. 1930년대에는 끝자리가 4일과 9일에는 원계(圓溪) · 화곡(花谷) · 효령 · 어염(於鹽)에서, 5일과 10일에는 군위읍 · 의흥에서 오일장이 섰다. 이 외에도 신원(薪院)에서는 10일장이 열렸으며, 주로 농산물 · 가축 · 해산물 등이 거래되었다.
해방 이후 정기시장이 크게 증가하여 1957년에는 11개, 1959년에는 13개로 늘어났으나, 1960년 이후 교통 · 통신의 발달과 경제성장에 힘입어 상설 점포는 증가한 반면에 정기시장의 기능은 점차 약화되었다. 1981년에 석산장(石山場)이 폐지되었고, 1985년에는 군위읍과 소보 · 효령 · 구효령 · 신원 · 대율 · 우보 · 의흥 · 화본 · 학성 등에 오일장이 남아 있었다. 2024년 기준 소보장이 끝자리 2 · 7일, 군위장이 3 · 8일, 우보장이 4 · 9일, 의흥장이 5 · 10일에 열리고 있다.
교통의 경우 중앙선 철도가 군의 동부를 남북으로 지나면서 경상북도의 의성군 · 영천시와 연결되고, 국도 28호선이 철도와 거의 같이 지나고 있다. 또 국도 5호선이 서부를 남북으로 지나 의성군, 대구광역시와 연결되고, 그 외에도 지방도가 대구광역시와 구미시로 연결된다. 또 중앙고속도로, 상주영천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한편, 2014년부터 2030년까지 군위군 소보면과 의성군 비안면 일원에 대구경북신공항 건설이 추진 중이다. 대구광역시 동구 지저동에 있던 대구 공군기지와 대구국제공항을 폐항 후 이전할 예정으로, 대구경북신공항 건설과 함께 중앙고속도로 확장, 신공항 철도 신설 등 접근 교통망의 신설 및 확장도 계획되어 있다.
군위군에는 팔공산, 화산을 비롯한 수려한 산악 관광자원과 사찰이 많다. 그중 주요 관광지로는 부계면 남산리의 군위삼존석굴(軍威三尊石窟), 군위삼존석굴모전석탑과 남산계곡, 대율리의 자연경관이 뛰어난 한밤성안과 막암, 삼국유사면 화북리의 학소대(鶴巢臺), 인각사, 화산산성(華山山城)[화산마을], 군위읍 상곡리의 선방산(船放山: 437m) 지보사, 소보면 달산리의 청화산 법주사 등이 있다. 또한 최근 관광산업 육성과 함께 새롭게 조성된 관광지로 장곡자연휴양림, 삼국유사테마파크, 어슬렁대추정원 등이 있다.
팔공산맥이 나지막하게 이어지는 남산리 높은 바위벽 속에 들어선 군위삼존석굴은 493년(소지왕 15) 극달화상(極達和尙)이 창건했는데, 석굴 입구는 가로 4.25m, 세로 4.3m로 둥글게 뚫려 있으며, 내부 바닥은 사각형을 이룬다. 석굴 안에는 본존불인 아미타불이 중심에 앉아 있고, 그 좌우로 주2과 지장보살이 서 있다. 석굴 앞뜰에 통일신라시대에 조성한 군위삼존석굴모전석탑이 있다.
팔공산의 명소로 손꼽히는 남산계곡은 주변 송림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며 여름철 관광지로 유명하다. 학소대는 위천 상류에 자리한 백학의 서식처로, 옛날에 많은 백학이 둥지를 치고 서식했다고 하여 학소대라 부른다.
삼국유사면은 사방이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들 산 중 규모가 가장 큰 화산 산정부의 평지에는 1709년(숙종 35) 병마절도사 윤숙(尹淑)이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석성인 화산산성이 있다. 흥예문에서 수구문에 이르는 거리 200m, 높이 4m 규모로 축성을 시작했으나, 당시 심한 흉년으로 인해 완공하지 못하여 일부만 남아 있다. 산성 위쪽 해발 800m 산 정상에는 고랭지채소를 주로 생산하는 화산마을이 있다.
선방산 중턱에는 신라 문무왕(文武王: ?681) 때 의상(義湘: 625702)이 창건한 지보사가 있으며, 보물로 지정된 군위 지보사 삼층석탑(軍威 持寶寺 三層石塔)이 있다. 청화산 초봉의 남쪽 기슭에는 법주사가 자리 잡고 있으며, 법주사 보광명전(法住寺 寶光明殿)[대구광역시 문화유산자료] 앞마당에는 법주사오층석탑(法住寺五層石塔)[대구광역시 문화유산자료]과 군위법주사왕맷돌(軍威法住寺왕맷돌)[대구광역시 민속문화유산]이 있다.
장곡자연휴양림은 군위삼존석굴, 인각사와 함께 팔공산 순환로에 위치한 휴양림이다. 숲속의 집, 산막, 산림문화휴양관, 자연 생태체험 학습관, 족구장, 어린이 물놀이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어 삼림욕뿐 아니라 생태체험도 가능하다.
어슬렁대추정원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추를 형상화한 공원으로 2017년에 완공하였다. 군위군의 대추 생산량은 연간 1,600톤으로 경산과 보은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생산량이 많으며, 대부분 의흥면에서 생산한다.
군위군의 서북부에 있는 읍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84.08㎢이며, 인구는 7,803명이다. 읍 소재지는 동부리이다.
동쪽의 선방산 · 마정산, 서쪽의 물부리산[무담산: 454m] 등이 읍을 둘러싸고 남북으로 긴 분지를 형성한다. 그 중앙에서 위천이 흐르며, 의성군 금성면에서 발원한 동천이 위천과 합류하고, 위천을 따라 좁고 긴 곡저에 경지와 중심 시가지가 발달하였다.
군위군의 동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면적은 114.61㎢이고, 인구는 1,295명이다. 면 소재지는 학성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로면이라 개칭하고 군위군에 편입되었다. 2020년 1월 삼국유사면으로 개칭되었다.
삼국유사면 대부분은 면계를 따라 화산[828m] · 선암산 · 조림산 · 매봉 · 뱀산[834m] · 방가산 등 해발 600~800m급의 급사면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안쪽에는 동서 방향으로 길게 펼쳐진 고위평탄면이 있다. 수지상(樹枝狀)의 하계(河系)를 가진 위천 상류가 산지를 개석해 좁은 곡저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군위군의 남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면적은 64.81㎢이고, 인구는 2,076명이다. 면 소재지는 창평리이다.
남동단에 팔공산이 자리하며, 그 주령이 면의 남부 경계를 이룬다. 남천과 그 지류인 사창천 유역에는 소규모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군위군의 중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면적은 36.77㎢이고, 인구는 1,194명이다. 면 소재지는 화본리이다.
동쪽의 조림산과 남단의 시루봉[714m]이 최고봉으로, 이들 산지에서 뻗어 나온 구릉성 산지가 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위천의 지류인 구천이 산지를 침식해 하천 연안에 충적평야를 형성하였다.
군위군의 북서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면적은 101.30㎢,이고, 인구는 2,264명이다. 면 소재지는 송원리이다.
지역의 대부분이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면의 중앙부를 곡정천이 곡류하며 충적평야를 형성하였다. 하천을 따라 농경지 및 취락이 분포해 있다. 도로는 모동-현서 간 지방도와 구미-비안 간 군도가 면의 중앙부에서 교차해 교통이 비교적 편리하다.
군위군의 중앙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면적은 59.98㎢이고, 인구는 1,917명이다. 면 소재지는 이화리이다.
지역의 대부분이 구릉성 산지를 이루며, 면의 북쪽에 왕제산(旺齊山: 320m)과 국통산(國通山: 337m) 등이 있다. 면의 중앙부를 관류하는 위천을 따라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주요 농업 생산지를 이룬다. 도로는 중앙선과 산성-우보 간 군도가 면의 동부를 남북으로 통과하며, 언양-우보 간 지방도가 면의 북부를 동서로 통과해 교통이 비교적 편리하다.
군위군의 북동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4.17㎢이고, 인구는 2,257명이다. 면 소재지는 읍내리이다.
파전리에 진산인 용두산(龍頭山: 142m)이 있으며, 지형은 동부가 높고 서부가 낮은 동고서저의 말굽형 형상이다. 최고봉은 북동단의 선암산이며, 면의 중앙을 흐르는 위천을 따라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도로는 영주-포항 간 국도가 면의 중앙부를 통과하며 경상북도의 영천시 · 의성군 · 안동시 방면과 연결되고, 산성-점곡 간 군도가 남북의 인접 면과 연결되어 교통이 비교적 편리하다.
군의 남동부에 있는 면이다. 2024년 12월 31일 면적은 98.46㎢이고, 인구는 3,657명이다. 면 소재지는 중구리이다.
위천의 북쪽에 국통산과 마정산 · 적라산 · 응봉산 등을 연결하는 산릉이 면계를 둘러싸고 있으며, 면의 대부분은 매봉산(梅峰山: 489m)을 최고봉으로 하는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면의 중앙을 남동에서 북서로 남천이 흘러 유역에 띠 모양의 평야가 발달해 있다. 도로는 마산-중간진 간 국도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해 대구광역시와 연결되며, 동쪽으로는 언양-우보 간 지방도가 경상북도의 영천시 · 의성군과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