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시대, 제27대(재위: 1313~1330; 1332~1339) 왕.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이러한 가운데, 충숙왕은 1318년(충숙왕 5) 5월, 그간 폐단이 많았던 사심관(事審官)을 폐지하는 한편, 제폐사목소(除弊事目所)를 설치했다가 이를 찰리변위도감(察理辨違都監)으로 고쳐 권세가가 탈점한 전민(田民)을 색출해 그것을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게 하였다. 권세가들이 이를 불만으로 여겨 충선왕에게 호소해 충선왕의 개입으로 찰리변위도감이 폐지되었고, 이후 충선왕이 실각한 후인 1321년(충숙왕 8)에 다시 설치되었된 것을 보면, 찰리변위도감의 개혁이 대상으로 한 권세가에는 충선왕을 지지한 세력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320년(충숙왕 7) 원에서 인종(仁宗)이 사망하고 영종(英宗)이 즉위하는 정국 변동 속에서 충선왕이 실각하고 토번(吐蕃)으로 유배되자, 이듬해에 충숙왕은 충선왕의 측근 신료로서 고려의 인사(人事) 및 재정 등을 좌우하던 권한공(權漢功) · 채홍철(蔡洪哲) 등을 수감하여 국문하고 유배보냈다. 충선왕의 영향에서 벗어나 스스로 국정을 관리하기 위한 첫 조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해 충숙왕은 원 조정에 들어오라는 명을 받고 입조했다가 그대로 억류되어, 영종이 사망하고 태정제(泰定帝)가 즉위하는 정국 변동 속에서 1324년(충숙왕 11)에 이르러서야 귀국할 수 있었다. 이는 충선왕이 실각하고 충숙왕이 그 측근 세력들을 숙청해 나가는 가운데, 충숙왕으로부터의 처벌을 피하고자 한 정치 세력이 원 조정에 충숙왕을 무고하고 심왕 왕고를 고려 국왕에 세우고자 하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었다. 1321년 시작된 이른바 ‘심왕옹립운동’은 충선왕의 측근 세력들이 주도하고 다른 고려의 신료들도 대거 동조하는 가운데 진행되었으나 성사되지 못하였다. 이에 심왕옹립운동을 추진했던 세력 가운데 일부는 그 연장선상에서 고려 국호를 없애고 정동행성(征東行省)을 원 내지의 행성과 동일한 형태로 만들 것, 즉 입성(立省)을 원 조정에 요청하기도 하였다.
1325년(충숙왕 12) 충숙왕은 다시 한번 개혁 교서를 반포해 당시의 국정과 관련한 방대한 개혁안을 제시하며 심왕옹립운동과 입성론 등으로 혼란해진 정국을 수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후로도 심왕 측의 무고로 원 사신의 조사를 받게 되는 상황 등이 연이어 발생하는 가운데 개혁이 지속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충숙왕이 정치를 일부 측근 신료들에게 일임하자, 측근 신료들 가운데에도 당시 원에서 케식 생활을 하며 원의 실권자 엘테무르[燕帖木兒]의 신임을 받고 있던 세자를 왕위에 올리고자 하는 세력이 대두했다. 이에 충숙왕은 1329년(충숙왕 16) 10월, 세자에게 왕위를 넘길 것을 원에 요청하였고, 1330년(충숙왕 17) 2월 왕위에서 물러났다. 즉위 후 충숙왕의 측근 세력을 정계에서 몰아내며 충숙왕 지지 세력과 갈등하던 충혜왕이 1332년(충숙왕 복위1) 원의 정국 상황과 관련해 폐위되자, 충숙왕이 다시 왕위에 올랐다. 복위 후에는 정사를 크게 돌보지 않다가 1339년(충숙왕 복위8)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원사(元史)』
단행본
- 김형수, 『고려후기 정책과 정치』(지성인, 2013)
논문
- 강순길, 「충숙왕대의 찰리변위도감에 대하여」(『호남문화연구』 15, 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소, 1985)
- 김혜원, 「원 간섭기 입성론과 그 성격」(『14세기 고려의 정치와 사회』, 민음사, 1994)
- 이명미, 「충숙왕대 국왕위 관련 논의와 국왕 위상」(『한국중세사연구』 36, 한국중세사학회, 201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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