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구(대구광역시) (())

대구광역시 북구청
대구광역시 북구청
인문지리
지명
대구광역시 북부에 위치한 구.
지명/행정지명·마을
면적
93.95㎢
인구
41만 3010명[2024년 12월 31일 기준]
행정구역
대구광역시 북구
구청 소재지
북구 침산동
공식 홈페이지
https://www.buk.daegu.kr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북구(대구광역시)는 대구광역시 북부에 위치한 구이다. 농업 비중이 낮고 3차산업 중심의 도시형 구조를 보인다. 대구제3산업단지·검단산업단지가 섬유·기계 산업의 거점이었으나 쇠퇴하면서 중소 금속가공업 위주로 재편되었고, 금호워터폴리스를 조성 중에 있다. 유통시설로 27개 사설시장과 대구종합유통단지 등이 있고, 팔달시장과 칠성종합시장 등은 전통시장으로 명성이 높다. 경부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 대구외곽순환고속도로, 경부선 철도 등 광역망이 지나가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북구8경은 대표 관광자원이다. 대구광역시 북구청은 침산동에 있다.

정의
대구광역시 북부에 위치한 구.
개관

대구광역시 북부에 위치한 북구는 동쪽은 동구 팔공산과 접하며, 남쪽은 동구 · 중구 · 서구, 서쪽은 달성군 다사읍과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북쪽은 칠곡군 동명면과 경계를 이룬다.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8°30′~128°37′, 북위 35°52′~35°59′이다. 과거 대구제3산업단지 · 검단산업단지가 섬유 · 기계 산업의 거점이었으나 쇠퇴하면서 중소 금속가공업 위주로 재편되었고, 금호워터폴리스가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조성 중에 있다. 유통시설로 27개 사설시장과 칠곡시장, 대구종합유통단지 등이 있으며, 팔달시장과 칠성종합시장은 전통시장으로 명성이 높다.

교통은 경부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대구외곽순환고속도로, 경부선 철도 등 광역망이 지나가는 교통 요충지다. 북구8경은 지역의 대표 관광자원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93.95㎢이고, 인구는 41만 3010명이다. 행정구역은 23개 행정동과 31개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구광역시 북구청은 침산동에 있다.

자연환경

태백산맥 줄기의 팔공산과 도덕산(道德山: 661m), 문암산(門巖山: 427.1m) 등으로 구성된 환상산지가 뻗어 있으며, 남쪽에 있는 학봉(鶴峯: 278.3m)에 이르기까지 북부는 저산성 구릉지이고, 명봉산(明峰山: 402.1m)에서 사수재로 이어지는 서부는 구릉성 산지가 많은 지역이다.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에서 발원한 금호강은 대구광역시 북구와 동구 등 동북 지역을 지나며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한다. 팔조령에서 발원하여 대구광역시 시가지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북류하는 신천과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에서 발원하여 북구 칠곡을 지나는 팔거천, 연경동에서 동변동으로 흐르는 동화천이 남류하여 금호강에 합류하고 있다.

북구는 지형적으로 금호강을 경계로 남북이 나뉘며, 신천과 팔거천을 따라 다시 동서로 구분된다. 금호강 북쪽의 북부 지역은 칠곡 지역이 중심을 이루고, 함지산(函芝山: 284.4m)을 경계로 칠곡 지역과 조야동 · 서변동 · 동변동 · 노곡동으로 나뉜다. 남부 지역은 금호강과 신천의 범람원으로 이루어져 해발고도 50m 이하의 낮고 평탄한 지형이 펼쳐져 있다. 금호강과 신천 양안에는 주1이 발달하였으며, 대부분 사질토양으로 구성되어 오래전부터 취락지가 형성되었다.

대구광역시는 북동부와 남부는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서부가 개방된 분지형 지형으로, 겨울에는 춥고 여름은 무더운 내륙 분지형 기후의 특성을 가진다. 1991~2020년 평년값 기준 연평균기온은 14.5℃이고, 최한월인 1월의 평균기온은 0.8℃, 최난월인 7월의 평균기온은 26.3℃로 연교차가 크다. 연평균강수량은 1107.2㎜이나,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연도별 평균강수량 편차가 심하다.

역사

북구 지역은 금호강과 신천을 따라 일찍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선사시대 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1998년 북구의 동서변지구 택지개발공사로 발굴 조사된 대구 서변동 고분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유적과 빗살무늬토기가 다수 확인되어 신석기시대부터 이 지역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현재까지 확인된 청동기시대 유적에는 동천동(東川洞) 유적, 연암산(燕岩山) 선사유적, 침산(砧山) 선사유적, 검단(檢丹) 유물 산포지, 서변동(西邊洞) 청동기 유물 출토지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금호강 유역의 산격동 연암산 선사유적에서는 집터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토기와 석기 편(片)의 산포 양상으로 보아 인근에 취락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토기와 석기를 대량으로 제작한 작업장으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구릉의 남쪽 기슭에는 삼국시대돌널무덤[석관묘(石棺墓)]이 분포하고 있어, 이 지역이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용된 공간이었음을 보여 준다.

신라시대에는 대구현(大丘縣)과 팔거리현(八居里縣)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팔거리현은 757년(경덕왕 16)에 팔리현(八里縣)으로 개칭되었다. 팔리현은 고려 전기 팔거현(八居縣)으로 개칭되었으며, 후에 팔거현(八居縣)의 거(居)가 거(莒)로 바뀌어 팔거현(八莒縣)으로 불렸다.

1596년(선조 26)에는 경상감영이 일시적으로 팔거현으로 이전되면서 이 지역이 중요시되었다. 1640년(인조 18) 팔거현 내에 가산산성(架山山城)이 축조되면서, 방어상으로 그 중요성이 강조되어 팔거현은 칠곡도호부로 승격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혁으로 칠곡도호부가 칠곡군으로 개편되어 대구부에 속하였고, 이듬해 13도제가 실시되면서 경상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의 북구는 1938년 11월 2일, 대구부 조례 제22호에 따라 경상북도 달성군 성북면 소속 4개 동을 관할하기 위해 설치된 북부출장소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1963년 1월 1일, 기존의 북부출장소와 공산출장소 관할이던 동변동과 서변동을 편입하여 대구시 북구로 승격하였다.

1981년 7월 1일 대구시가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북구도 대구직할시의 자치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대구직할시가 광역시로 승격하여 대구광역시 북구가 되었다.

유물 · 유적

북구는 5,000여 년 전 신석기시대 유적인 서변동 유적을 비롯해 청동기시대의 동천동 유적과 매천동 유적, 원삼국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 유적인 검단토성(檢丹土城)과 팔달동 유적, 삼국시대 대구 구암동 고분군(大邱 鳩岩洞 古墳群), 대구 팔거산성(大邱 八莒山城), 조선시대 대구 광해군 태실(大邱 光海君 胎室) 등 많은 유적이 분포되어 있다. 국가에서 지정한 문화유산 9점, 시에서 지정한 문화유산 7점 등 총 16점의 문화유산이 있다.

북구 함지산 서쪽 능선에 대규모로 조성된 대구 구암동 고분군은 2018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고분군은 경사가 심한 여러 갈래의 능선을 따라 분포하며, 현재 확인된 봉분은 360기에 이른다. 이 가운데 능선 위에는 지름 15~25m의 중형분 34기와 25m 이상의 대형분 7기를 포함한 대형 무덤이 자리하고, 경사면에는 나머지 소형분이 분포한다.

대구 구암동 고분군은 5~6세기 팔거평야를 중심으로 성장했던 신라 지역 세력의 수장층 무덤으로, 봉분 내부를 돌로 채우는 방식, 연접분, 주부곽식 구조 등 신라 고분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 준다. 동시에 다른 신라나 가야 고분에서는 보기 힘든 돌무지돌덧널무덤[적석석곽] 양식을 갖추고 있어, 한반도 고대사와 고분 연구에서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대구 팔거산성은 2023년 6월 27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 산성은 구암동 일대와 대구분지 일원을 조망하면서 동시에 동쪽과 서쪽, 북쪽으로 연결되는 육로와 수운을 관리할 수 있는 요충지에 축성되었다. 5~6세기 삼국시대 산정식 성곽이며, 성벽은 함지산의 자연 지형을 따라 축조되었다. 1999년 지표조사를 통해 파악된 성벽의 전체 둘레는 약 1,136.8m, 성내 면적은 약 5만 5101.67㎡이다. 발굴 조사 결과 신라시대 산성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문식(懸門式) 구조, 곡성(曲城) 등이 확인됨에 따라 신라시대 축성 양식의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완만한 경사의 성벽, 곡성과 성벽 접합부의 독특한 축조 방식 등은 팔거산성만의 고유한 특징으로 평가된다.

2022년에 대구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된 대구 광해군 태실은 연경동 산135에 있다. 조선 제15대 왕인 광해군(光海君: 1575~1641)의 태실로 광해군이 태어난 뒤 6년 뒤인 1581년(선조 14) 의례에 따라 건립되었다. 태를 봉안한 아기태실이 처음 조성되었고, 광해군이 왕위를 이어받은 후인 1609년(광해군 1) 가봉 공사가 완료되었다. 2018년 실시한 정밀 발굴 조사 결과, 왕실의 자손이 태어나면 태를 묻는 아기태실과 이 자손이 왕위에 올랐을 때 만드는 가봉태실의 구조가 모두 확인된 최초의 사례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유적으로 구암서원숭현사(龜岩書院崇賢祠)[1982년 지정]와 칠곡향교대성전(漆谷鄕校大成殿)[1982년 지정]은 모두 대구광역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북구 산격동 연암공원 안에 자리한 구암서원숭현사는 구계(龜溪) 서침(徐沈)의 덕을 기리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며, 숭현사에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구암서원은 1665년(현종 6)에 세웠고,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그 후 1924년 유림이 다시 지었다.

칠곡향교대성전은 북구 읍내동에 있다.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국립 교육기관이다. 칠곡향교는 언제 처음 지었는지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1398년(태조 7)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대성전은 17세기 초에 세웠으며, 1907년에 보수하였다. 현재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 교육 공간인 명륜당(明倫堂)이 남아 있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그의 제자들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교육 · 문화

북구에는 조선시대의 사학 기관인 서원이 다수 분포한다. 서원은 교육 기능과 함께 선현을 제향하는 사묘(祠廟)를 건립하여 사림의 권위를 유지하는 역할도 담당하였다.

연경동의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광역시 지역에서는 최초로 세워진 서원이자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으로, 1563년(명종 18)에 건립되었다. 이 서원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문인인 이숙걸(李淑榤)이 연경동에 세운 서당을 바탕으로, 부사 박응천(朴應川: ?~1581)의 후원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한 것이다.

그 외에 1665년 세워진 구암서원과 1781년(정조 5)에 서변동에 세워진 서계서원(西溪書院), 1824년(순조 24)에 검단동에 세워진 서산서원(西山書院), 1831년에 매천동에 세워진 매양서원(梅陽書院)이 있다.

2024년 1월 1일 기준 북구의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9개, 중학교 22개, 고등학교 17개, 기타 학교 2개가 있으며, 전문대학 3개 [영진전문대학교, 대구과학대학교, 대구보건대학교]와 4년제 종합대학인 경북대학교가 있다.

산격동에 위치한 국립 경북대학교는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대구사범학교, 대구의학전문학교, 대구농업전문학교가 그 모태이다. 이들 학교가 1946년 각각 대구사범대학, 대구의과대학, 대구농과대학으로 승격한 뒤, 1951년 통합되어 국립 경북대학교로 개편되었다.

영진전문대학교는 1977년 3월 영진공업전문학교로 개교하였다. 1981년 실업 계열 학과를 신설하면서 영진실업전문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였으며, 이후 현재의 영진전문대학교로 이어졌다.

대구과학대학교는 1960년 3년제 대구간호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았다. 1981년 대구여자전문대학으로 교명을 바꾸었고, 1998년에는 대구과학대학으로 변경하였다. 대구보건대학교는 1971년에 설립되었다.

북구에는 공공도서관을 비롯해 공연장과 전시 시설 등 다양한 문화공간이 분포한다. 공공도서관으로는 대구광역시립북부도서관, 구수산도서관, 대현도서관, 태전도서관, 꿈꾸는마을도서관 도토리, 더불어숲도서관, 사립공공 연암도서관과 여러 작은도서관이 있다. 이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대구광역시립북부도서관은 침산동에 위치하며, 약 30만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565석의 열람 좌석을 갖추고 있다.

문화시설로는 공공 공연장, 민간 공연장, 구민 회관, 청소년 회관 등 지역문화 복지시설이 있다. 칠성동2가에 있는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제일모직이 1996년 대구 사업장을 구미로 이전하면서 제일모직 터의 일부에 문화공간을 건립하여 대구광역시에 기부 채납한 것으로, 2003년에 개관하였다. 오페라 제작과 공연, 시민 예술교육 프로그램 및 성악가를 위한 오펀스튜디오 등이 운영되고 있으며, 매년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이루어진다.

어울아트센터는 1999년 10월 9일에 북구문화예술회관으로 개관하였으며, 2015년 명칭을 어울아트센터로 변경하였다. 기획 공연, 전시회, 영화 상영, 문화 강좌 운영, 스포츠센터 운영 등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북구청소년회관은 2000년 12월 산격2동에서 개관하였으며, 각종 공연, 전시, 취미 활동, 스포츠 등 종합적인 문화공간으로 청소년의 정서 함양과 건전한 놀이 문화 정착을 위한 공공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북구에서는 해마다 다양한 문화 축제가 열린다. 대표적인 축제로는 매년 9~10월 금호강 주변에서 열리는 금호강 바람소리길축제가 있으며, 이 기간에는 문화 공연과 체험 행사, 동 행정복지센터가 주관하는 프로그램이 함께 진행된다. 매년 1월 1일에는 해맞이 행사가 개최되어 해맞이 공원에서 새해의 안녕을 기원하며, 소원지 쓰기와 음식 나눔 등이 펼쳐진다.

또한 음력 정월 대보름에는 금호강 산격대교 하단 둔치 일원에서 금호강 정월대보름 축제가 열리는데, 달집태우기와 민속놀이 체험, 세시 음식 나누기, 달맞이 행사가 이어진다. 이와 더불어 매년 5~6월에는 대구 북구 떡볶이 페스티벌이 열려 떡볶이 콘테스트, 체험 프로그램, 무대 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된다.

민속 · 설화 · 민요

민속

북구에는 복현동 당산제(伏賢洞 堂山祭)를 비롯해 날뫼북춤, 줄당기기 등 다양한 민속놀이가 전승된다. 이 가운데 복현동 당산제는 매년 정월대보름에 마을의 평안과 무탈을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이다.

조선 후기 복현동은 늑대 등 맹수의 피해가 심했는데, 한 노인이 뒷산 느티나무에 제사를 지내는 꿈을 꾼 뒤 실제로 제를 올리자 더 이상 늑대가 나타나지 않았고, 마을에도 큰일이 없었다고 전한다. 이후 주민들은 그 느티나무를 당산나무로 삼아 신성시하며 금줄을 둘러 부정을 막고, 따로 관리인을 두어 지켜 왔다. 이 당산나무는 현재 복현동 경상고등학교 뒤편 야산에 서 있는 느티나무로, 정확한 수령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마을 공동체가 해체되자 복현동 당산제도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칠곡지구와 무태동, 검단동의 자연 마을에서는 비교적 많은 민속문화가 전승되고 있다. 북구 관음동과 도남동 일대에서는 칠곡 농악과 지신밟기가 전승되고 있다. 특히 관음동에서는 30여 년 전부터 풍물계가 조직되어 명절에 풍물을 쳤으며, 칠곡 지역 농악 대회에 출전하기도 하였다. 검단동에서는 1980년대까지 동제를 지냈으며, 이때 당내림굿을 하였고 동제가 끝나고 나면 지신밟기를 했다고 한다.

설화

북구 지역에는 자연환경과 관련한 다양한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매천동 자연부락인 매남마을 솔야(松野)에는 광야제(廣野堤)와 관련된 「광야제에 얽힌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고려시대 솔야에 살던 노씨(盧氏) 집안에는 아들 여덟이 있었는데, 모두 총명하고 학문에 힘써 함께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그러나 집안이 번창하자 간신들이 이를 시기하여 여덟 형제를 모함하였고, 끝내 주2을 당하게 되었다. 이후 노씨 집안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못을 파고 만든 것이 광야제라고 전한다.

「말샘의 전설」은 서변동의 말샘과 임진왜란 때 활약한 김덕령(金德齡: 1567~1596) 장군과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전설에 따르면 김덕령 장군이 말샘에 이르렀을 때, 샘에서 한 마리의 준마가 솟아 나와 장군을 태우고 무태(無怠) 앞들을 내달렸다.

이때 장군은 가지고 있던 말채찍을 둘로 나누어 하나는 무태 앞들에 꽂고, 다른 하나는 무태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가남봉(柯南峰)에 꽂았다. 무태 앞들에 꽂은 가지는 자라 당나무가 되었으며, 가남봉 정상에 꽂은 가지는 크게 자라 마치나무[말채나무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무태 조산봉」은 서변동의 조산봉(鳥山峰)과 무태(無怠) 땅에 살던 은씨(殷氏) 집안과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시대 또는 고려 전기에 무태 앞들을 대부분 소유한 큰 부자 은씨가 살았다. 그는 인심이 좋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과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자 은씨의 주3는 손님을 줄여 재물을 아낄 방법을 궁리하던 중, 집을 찾아온 한 노승의 말을 듣고 들 앞에 있던 산봉우리를 깎아 평평한 들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산 중턱까지 깎아 내리던 순간 산을 지키던 학 세 마리가 날아올랐고, 깜짝 놀란 종부는 머슴들에게 다시 산을 쌓아 올리게 하였다. 이렇게 깎다가 다시 쌓은 산이 지금의 조산봉이라고 한다. 그 뒤 은씨 집안은 손님이 끊기고 큰 홍수까지 닥쳐 집과 온 들이 물에 잠기면서 결국 몰락했다고 전한다.

「칠성석의 유래」는 북구 칠성동2가에 있는 칠성석(七星石)과 관련한 암석 설화이자 지명유래담이다. 칠성석은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일곱 개가 북두칠성(北斗七星)처럼 흩어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조선 정조(正祖: 17521800) 때 경상도관찰사 이태영(李泰永: 1744?)이 꿈에서 대구읍성(大邱邑城) 북문 밖으로 북두칠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곳에 가 보았다. 그곳에는 실제로 큰 바위 일곱 개가 북두칠성 모양으로 놓여 있었다.

이태영은 바위마다 일곱 아들의 이름을 새겼는데, 훗날 아들들은 각기 자기 이름이 새겨진 바위의 모양을 닮아 자라났다. 울퉁불퉁한 바위에 이름을 새긴 세 아들은 무관(武官)이 되었고, 동그스름한 바위에 이름을 새긴 세 아들은 문관(文官)이 되었으며, 평범한 바위에 이름을 새긴 아들은 아무 벼슬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민요

북구 지역의 민요로는 관음동 농요인 「모찌는 소리」, 「모심는 소리」, 「논매기소리」, 「타작소리」, 「어사용」, 「방애타령」 등 다수가 전승되고 있다. 무태동 서변마을에도 서변동 「모내기소리」와 「방애타령」이 내려오고 있다. 검단동 「모내기소리」는 아침과 오후, 저녁때 부르는 소리로 구분된다. 도남동의 「어사용」은 나무꾼의 신세타령 노래로, 노동요유희요의 성격을 동시에 띠고 있다. 삶의 고단함을 토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며, 혼자 부르는 독창의 형식이며, 장단에서 자유로운 구조를 가진다.

산업 · 교통 · 관광

북구 지역은 농업 인구의 비중이 매우 낮으며, 3차산업의 비중이 높은 전형적인 도시형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금호강 북편의 농촌 지역은 도시화의 확산으로 경지면적이 크게 줄었으며, 남은 농지는 대부분 개발제한구역 안에 분포한다. 주요 원예작물은 시설채소로, 대도시 근교라는 입지적 이점을 활용해 다른 원예작물보다 경쟁력이 높고 중요한 소득원이 되고 있다. 반면 과수 · 화훼 · 특용작물 재배는 규모가 작아 미미한 수준이다.

제조업은 1960~1970년대 대구제3산업단지검단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인근 서대구산업단지와 함께 대구광역시 지역 섬유, 기계, 금속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최근 공장들이 달서구의 성서산업단지로 이전해 가면서 공업 기능이 줄어들었다. 특히 2000년 이후 섬유업체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제조업체가 타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북구의 제조업은 중소기업 중심으로 전환되었으며, 최근에는 절삭가공 등 금속가공 산업이 주종을 이루고, 기타 기계 및 장비 제조업체와 식료품 제조업체 등이 입지해 있다.

대구제3산업단지는 1965년 2월 지방공업단지로 지정되어 1967~1968년 노원3동 일대에 조성된 공업지역으로, 당시 대구광역시에 산재하고 있던 경공업 제조업체를 집단화하여 공해 방지를 통한 도시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검단산업단지는 1988년 지방공단으로 조성되었다. 조성 당시 한일합섬, 유성모직, 갑을, 아주섬유 등 대규모 업체가 입주하여 섬유산업 중심의 공업단지로 발전하였으나 최근에는 점차 쇠퇴하고 있다.

그러나 2015년부터는 경부고속도로와 금호강에 인접한 북구 검단동에 도시형 첨단 복합 산업단지인 금호워터폴리스가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조성 중에 있다. 이 산업단지는 검단산업단지 및 EXCO와 연계되며, 전자정보통신 · 메카트로닉스 · 신소재 · 자동차 및 운송 장비 관련 업종이 입주할 예정이다. 또한 배후 주거지역 개발도 함께 추진되고 있다.

북구에는 27개의 사설 시장과 1개의 공설시장, 대형마트 3곳, 백화점 2곳이 입지해 있다. 칠곡중앙대로에 위치한 칠곡시장은 공설시장으로 총 62개의 점포가 있다. 사설 시장 중 규모가 큰 곳은 산격동에 위치한 대구종합유통단지 산업용재관으로 1,696개의 점포가 있다. 전통시장으로 오래된 곳은 1969년에 개설한 팔달시장[노원동2가]과 동대구시장[대현동]이 있으며, 1970년대에 개설한 시장은 경명시장[칠성동1가], 삼성시장[칠성동1가], 칠성종합시장[칠성동1가], 팔달신시장[노원동3가] 등이 있다.

이 중 팔달시장은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북부를 연결하는 교통 요지로, 인근에 대구북부시외버스터미널과 서대구고속버스터미널이 있다. 이런 이유로 시장을 처음 개설하면서 ‘팔방(八方)으로 연결되는 교통 요지’라는 뜻의 ‘팔달(八達)’로 시장 이름을 정하였다. 여러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한 채소를 공급하는 채소 도매시장으로 기능하였다.

1976년 팔달신시장이 개장되면서 팔달시장의 상권은 크게 확산되었으나, 1988년 북구 매천동에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이 개장한 이후 채소 도매 기능을 빼앗기면서 시장 기능이 약화되었다. 이후 유통시장의 변화와 1995년 유통시장 개방화로 전통시장인 팔달시장은 침체를 겪었다. 현재 팔달시장의 주요 판매 품목은 의류와 생필품이며, 팔달신시장이 채소류를 취급하는 도매시장 기능을 한다.

칠성종합시장은 의류와 청과물로 유명한 대구광역시의 전통시장이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되어 해방 이후 상설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시장 터는 원래 장마철이면 물이 넘쳐 사람이 살지 않던 곳이었다. 그러나 1926년 신천제방이 축조되면서 정착이 가능해졌고, 대구광역시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 되었다. 이곳에서 주변 농산물이 거래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었다.

백화점은 칠성동2가의 롯데백화점 대구점과 읍내동의 동아아울렛 강북점이 있으며, 대형마트는 산격2동의 코스트코코리아 대구점, 동천동의 홈플러스 칠곡점, 칠성동2가의 이마트 칠성점이 있다.

북구는 신천을 중심으로 신천대로와 신천동로가 만나는 지점에 자리하며, 노원로 등 내부순환로와 연결되는 편리한 시내 교통망을 갖추고 있다. 광역 교통망으로는 경부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대구외곽순환고속도로가 북구를 관통하며, 금호JC · 칠곡IC · 북대구IC를 통해 대구 시내와 경상북도, 전라도 지역까지 이어진다. 또한 경부선 철도와 대구–안동 간 국도가 통과해 철도와 도로 접근성이 뛰어난 교통 요충지로 기능한다.

북구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북구8경은 금호강하중도, 꽃보라동산, 운암지수변공원, 팔달대교 야경, 경북대학교 캠퍼스, 함지공원, 구암서원, 침산정(砧山亭)이다. 그중 1경인 금호강하중도는 북구 팔달교와 노곡교 사이에 위치한 섬으로 금호강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고, 봄에는 유채꽃, 가을에는 코스모스 등을 식재하여 계절별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명소이다.

2경인 꽃보라동산은 대구광역시청 산격청사 앞 신천 변에 조성된 휴식 공간으로, 자전거도로와 산책로 주변에 벚꽃 명소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3경인 운암지수변공원은 함지산으로 둘러싸여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벽천폭포, 저수지를 가로지르며 수변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수변 덱 로드와 팔각정이 설치되는 등 주4으로 조성되어 있다.

4경인 팔달대교 야경은 대구 지하철 3호선이 지나는 야경과 금호강의 일몰과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지점이다. 5경인 경북대학교 캠퍼스는 본관 주변 꽃시계와 일청담, 지도못, 벚꽃길 등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명소이다. 6경인 함지공원은 북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생활공원으로 다양한 조경 시설과 물놀이 시설을 갖추고 있어 도심에서 가족과 함께 휴식하고 즐길 수 있는 명소이다.

7경인 구암서원은 배려와 나눔의 선비 정신이 깃든 주5을 실천하는 곳으로 인성 예절교육, 전통문화 체험, 인문학 강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으며, 야경이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8경인 침산정은 조선 전기 유명한 문장가였던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침산의 노을을 보고 감탄하여 한시 「침산만조」를 읊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광역시 도심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고, 침산정이 위치한 침산공원에는 인공 폭포와 산책로, 체육시설과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읍 · 면 · 동

대구광역시 북구에는 23개 행정동과 31개 법정동이 있다. 그중 행정동은 고성동, 칠성동, 침산1동, 침산2동, 침산3동, 노원동, 산격1동, 산격2동, 산격3동, 산격4동, 복현1동, 복현2동, 대현동, 검단동, 무태조야동, 관문동, 태전1동, 태전2동, 구암동, 관음동, 읍내동, 동천동, 국우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제36회 대구북구통계연보』(대구광역시 북구, 2023)
『2023 구정백서』(대구광역시 북구, 2023)

인터넷 자료

주석
주1

하천의 양쪽에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제방. 홍수가 일어날 때나 하천의 물이 범람할 때, 하천의 중심부보다도 가장자리 쪽의 유속(流速)이 약하므로 모래와 자갈이 가장자리에 쌓이면서 둑을 이룬다. 우리말샘

주2

죄를 지은 자의 벼슬과 품계를 빼앗고 벼슬아치의 명부에서 그 이름을 지우던 일. 우리말샘

주3

종가의 맏아들이나 맏손자의 아내. 곧 종가(宗家)의 맏며느리를 이른다. 우리말샘

주4

강이나 시내 따위와 잘 어우러지는 여러 시설을 마련한 공간. 우리말샘

주5

유학에서,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 곧 어질고, 의롭고, 예의 바르고, 지혜롭고, 믿음직함을 이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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