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대구광역시)는 대구광역시 서북부에 위치한 구이다. 섬유산업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이 주요 산업이다. 상리동 서대구IC를 통해 경부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등 4개 고속도로가 연결되며, 지역 내 중서부의 관문 역할을 한다. 주요 관광지로 와룡산, 달성토성마을, 비산성당·새방골성당 등이 있으며, 이현·평리공원 같은 도심 생태공간과 퀸스로드 패션거리, 중리동 곱창마을 등 특화거리가 있어 산업·상업·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지역이다. 면적은 17.32㎢로, 대구광역시에서는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다. 대구광역시 서구청은 평리동에 있다.
동쪽은 중구, 남쪽은 달서구, 서쪽은 달성군, 북쪽은 북구와 접한다.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8°31′~128°35′, 북위 35°51′~35°52′이다.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주력 산업이나 최근 도 · 소매업과 건설업 비중이 커지고 있다. 서대구산업단지와 대구염색산업단지가 대표적이며, 대형마트 2곳과 11개 전통시장이 상권을 형성한다. 상리동 서대구IC를 통해 경부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등 4개 고속도로가 연결되며, 지역 내 중서부의 관문 역할을 한다.
주요 관광지로 와룡산, 달성토성마을, 비산성당 · 새방골성당 등이 있으며, 이현공원 · 평리공원 같은 도심 생태공간과 퀸스로드 패션거리, 중리동 곱창마을 등 특화거리가 있어 산업 · 상업 ·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지역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7.32㎢로, 대구광역시에서는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면적이 작다. 인구는 16만 3135명이다. 행정구역은 17개 행정동과 9개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구광역시 서구청은 평리동에 있다.
서구는 대구분지(大邱盆地) 서쪽, 와룡산(臥龍山: 299.7m) 동쪽 기슭에 자리한다. 이 지역은 퇴적암이 침식되어 형성된 낮은 구릉성 저산지와 하천 범람과 퇴적암 풍화로 이루어진 충적지가 분포한다. 도시화 이전에는 구릉지는 주로 밭이나 묘지로, 충적지는 논으로 이용되었다.
하천 수계는 동에서 서로 흘러 금호강(琴湖江)과 합류하는 달서천(達西川)과, 북구와의 경계를 따라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국가하천인 금호강으로 나눌 수 있다. 달서천은 내당동과 비산동 구릉지에서 발원하여 약 3.5㎞를 흐른 뒤 금호강과 합류하는 준용하천으로, 집중호우 시 일부 지역에서 침수가 발생하기도 한다.
서구의 연평균기온은 과거 1113℃였으나 최근 10년간 14.5℃로 상승했으며, 8월 평균 최고기온은 31.9℃에 이른다. 연평균강수량은 9001,100㎜로 비교적 적은 편이다. 이처럼 서구는 분지 지형의 영향으로 한서 차가 큰 대륙성기후의 특징을 보인다.
서구 비산동 일대에서는 기원전 1세기경의 동기류(銅器類)와 출자형(出字型) 금동관(金銅冠) 등 청동기시대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1970년 평리동에서도 다수의 청동기시대 유물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서구 일대는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초기 국가 형성기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달성토성(達城土城)이 비산동 일대를 포함한 것으로 보아, 1세기 이후에는 평리동과 비산동 구릉지대에서 철기 문화에 기반한 정치 체계가 작동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수창군(壽昌郡)의 대구현(大丘縣)에 속했으며, 고려시대인 1143년(인종 21)에는 대구현의 현치(縣治) 관할에 속하였다. 이후 조선 전기인 1466년(세조 12) 대구군(大丘郡)이 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로 승격하였고, 지금의 서구 지역은 서중면(西中面)과 달서면(達西面)의 일부에 해당하였다.
1938년 11월 2일 출장소 설치 부조례에 따라 대구부 서부출장소(西部出張所)가 발족하였다. 1949년 8월 15일 「지방자치법」이 시행되면서 대구시(大邱市) 서부출장소로 개칭되었고, 1963년 1월 1일 구제 실시에 따라 서구로 승격되었다. 이후 1988년 1월 1일 달서구가 신설되면서 성당동과 성서 전역, 내당동 일부가 달서구에 편입되었다. 같은 해 5월 1일 서구는 자치구로 승격되어 자치단체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
동별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내당동은 낙동강 앞 동남쪽 산 아래에 있던 ‘당산목(堂山木)’을 기점으로 안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의미의 ‘안당골[內堂谷]’에서 유래하였다. 내당동은 대구부 달서면 지역이었는데, 1970년과 1982년, 1985년 세 차례에 걸쳐 여러 개로 분동되었으며, 1988년 1월 1일 시 조례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어 내당동 일부가 달서구에 편입되었다.
비산동(飛山洞)은 1608년(선조 41)에 해주 오씨(海州 吳氏), 인동 장씨(仁同 張氏), 경주 최씨(慶州 崔氏) 등 세 성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대구부 시절 비산동은 새터[지금의 비산5동], 날뫼들[지금의 비산7동]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70년, 1975년, 1979년에 여러 개의 동으로 분동되었고, 1997년과 2000년 두 차례 조정을 거쳐 현재의 동으로 확정되었다.
상리동은 가르뱅이[지금의 상리1동] 위쪽에 있다고 상리(上里)라 하였으며, ‘웃마’라고도 불렀다. 대구부 달서면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새방골[지금의 상리1동]과 가르뱅이[지금의 상리2동]를 합쳐서 상리동(上里洞)이라 하였으며, 달성군 달서면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에 대구부로 편입되었다.
원대동은 삼국시대 신라 화랑도가 전국 명소에서 수련하면서 묵었던 숙식소(宿食所)인 ‘원(院)’ 또는 ‘노원(魯院)’이 있던 터라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원태’ 또는 ‘원대’라 불린 원대동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용천동과 합하여 달성군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 대구의 구역 확장에 따라 대구시로 편입되었다.
중리동(中里洞)은 300여 년 전 와룡산 동남쪽 구릉지에 석씨 가문이 처음 거주한 뒤, 밀양 박씨(密陽 朴氏)와 나주 정씨(羅州 丁氏), 경주 최씨(慶州 崔氏), 수원 백씨(水原 白氏) 등이 이주하여 자연부락을 이룬 곳이다. 중리동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기동과 합하여 중리동이라고 하였고 달성군 달서면 상일동에 속했다가 1938년 10월 1일 대구부로 편입되었다.
평리동은 삼면이 들판인 ‘들말 평야’에 전답을 개척해 세운 마을이라 하여 ‘들마을’, ‘들말[들마]’, ‘고구랑들’로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등곡(長嶝谷)[또는 진등골]과 도장곡(道藏谷)을 병합해 평리동(坪里洞)이라 하고 달성군 달서면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 대구부 관할이 되었다. 1975년과 1979년에 분동이 이루어졌으며, 1982년 이후 지금과 같은 평리1동, 평리2동, 평리3동, 평리4동, 평리5동, 평리6동으로 구성되었다.
비산동과 내당동에 분포한 대구 달성 고분군(大邱 達城 古墳群)은 삼국시대 고분군으로, 달성토성 서남쪽의 얕은 구릉 위에 자리한다. 현재는 대부분 파괴되어 흔적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일제강점기 조사 당시에는 봉분이 남아 있던 고분 87기가 확인되었으며, 이 가운데 구릉 최상부에 자리한 59호분의 규모가 가장 컸다.
출토 유물은 토기류와 금속 유물로 나뉘는데, 토기류로는 접시 · 항아리 · 바리 · 사발 · 시루 등이 있으며, 금속 유물로는 목걸이 · 귀걸이 · 허리띠 장식구 · 금동관 · 칼 · 창 · 촉 · 마구류가 있다. 특히 금동관과 금동제관모(金銅製冠帽) 같은 장신구류, 금동 고리자루 · 금동 장식대도 · 금동 팔뚝가리개[金銅肱甲] 같은 무구류, 금동 안장틀 장식 같은 마구류는 대구분지 지배자 집단의 위상을 보여 주는 부장품으로 평가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 도시화가 진행된 비산동 일대에서도 유적이 발굴되었다. 1998년 비산동 200-82번지의 소방도로 건설을 위한 발굴조사 이후 1999년 비산동 202-1번지 유적 발굴 등 지속적인 소규모 발굴 조사를 통해 지하에 추가로 무덤이 잔존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비산동 와룡산 일대에서는 청동기시대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세형동검(細形銅劍), 동투겁창[銅矛], 동꺾창[銅戈] 등 청동 무기, 호랑이 모양 허리띠 고리[虎形帶鉤], 쇠뿔 모양 동기[牛角形銅器] 등이 출토되었다.
대구 상리동 고분군은 와룡산 북동쪽 능선의 우측, 상리동 가르뱅이 남쪽 능선에 자리한다. 현재 동쪽은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구 구마고속도로] 개설로 능선 일부가 분리된 상태이다. 2011년 계성고등학교 부지 인근 발굴 조사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돌덧널무덤[석곽묘(石槨墓)]과 석실분, 고려시대 · 조선시대의 분묘, 집석, 수혈 등이 확인되었다. 또한 삼국시대 토기 편과 통일신라시대의 연질완, 원권문과 점열문이 인화된 병 등이 출토되었다.
서구 이현동 이현공원 안에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참전용사 명예선양비(參戰勇士 名譽宣揚碑)가 있다.
근대 문화유산으로는 구 대성초등학교 건물, 대구애락보건병원(大邱愛樂保健病院) 건물, 대구애락보건병원 강당과 식당이 있다.
구 대성초등학교는 비산동에 남명보통학교로 설립된 지상 2층의 학교 건물이다. 1933년 화강암 기초에 붉은 벽돌로 조적되었으며, 1988년 대구대성초등학교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해 철거되었다. 경상북도 봉화군의 금정광산 금맥을 발견한 소남(小南) 김태원(金台原: 1877~1950)이 미취학아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남명보통학교는 1946년 대구대성국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으며, 1996년에 대구대성초등학교로 개칭하였다.
대구애락원은 1909년(융희 3) 내당동에 선교사들이 설립한 개신교 사회복지기관으로, 한센병 치료와 요양을 목적으로 세워졌다. 처음에는 대구 제중원[동산의료원] 근처 초가를 매입해 나환자 요양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후 1915년 영국 나환자 선교회인 ‘대영나병지구료회’의 지원으로 내당동에 부지를 마련해 1917년 현재 위치로 병원을 이전하였다. 1924년에는 대구애락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68년에는 대구애락보건병원으로 개칭하였다가 2004년 대구애락원으로 환원하였다.
2024년 1월 1일 기준 서구의 교육기관은 유치원 15개, 초등학교 17개, 중학교 8개, 고등학교 6개, 대학 1개가 있으며, 인구 감소의 영향으로 학급 수와 학생 수도 줄어들고 있다.
초등학교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학교는 1919년 개교한 대구달성보통학교 지금의 [대구달성초등학교]와 대구여자보통학교 지금의 [대구서부초등학교]이다. 이어 1933년 남명보통학교[지금의 대구대성초등학교], 1943년 대구달서국민학교[지금의 대구인지초등학교], 1954년 지금의 대구중리초등학교가 개교하였다. 이들을 제외한 서구의 대부분 초등학교는 196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사이에 설립되었다.
중학교 가운데 역사가 가장 오래된 경운중학교는 1910년 대구고등보통학교로 개교했으며, 경일중학교는 1954년에 문을 열었다. 평리중학교, 대평중학교, 서남중학교, 중리중학교는 1960~1980년대 사이에 개교하였다. 한편 서진중학교와 서부중학교는 통합되어 2018년 서대구중학교로 새로 출발하였다.
계성고등학교는 상리동에 위치한 자율형 사립학교로, 1906년(광무 10) 제임스 아담스(James S. Adams) 선교사가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 설립한 영남지방 최초의 중등 교육기관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교사와 학생들이 대구 · 경상북도 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2016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
이 밖에 서구 관내 고등학교로는 196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사이에 개교한 대구제일고등학교, 달성고등학교, 경덕여자고등학교가 있으며, 대구과학기술고등학교와 대구서부고등학교는 1997년에 개교하였다.
대구광역시 서구 평리동에 위치한 한국폴리텍Ⅵ대학 대구캠퍼스는 1973년 대구직업교육훈련기관으로 발족하였으며, 1994년 대구기능대학으로 승격하였다. 2006년 한국폴리텍Ⅵ대학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대구캠퍼스 외에 구미캠퍼스, 달성캠퍼스, 포항캠퍼스, 영주캠퍼스, 영남융합기술캠퍼스 등이 있다.
서구 문화공간은 문화예술 활동이 이루어지는 문화시설과 공공도서관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영화 및 연극 관람 등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시설로 과거에는 극장이 대표적이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여러 개의 극장이 개관했으나, 현재는 모두 폐관되었다. 서부극장은 1955년 원대동에서 개관하였으며, 신진극장은 1956년 내당동에서 개관하였다. 부민극장과 오스카극장은 1963년에 개관하였으며, 사보이극장은 1964년 내당동에, 빅토리극장은 1965년 원대동3가에서 개관하였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문화시설 중 대표적인 곳은 서구문화회관이다. 1998년 3월 5일 이현동에 개관한 서구문화회관은 영화, 연극뿐 아니라 무용, 콘서트, 전시, 강좌, 대관 등 보다 다양한 문화생활을 위해 마련된 복합문화공간이다. 무대 면적은 약 238㎡이고, 객석은 442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다른 문화시설로는 2022년 10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개관한 비원뮤직홀이 있다. 원대동1가에 자리한 이 시설은 클래식 음악을 중심으로 한 공연 문화공간으로, 200석 규모의 공연장을 갖추고 있다. 주민을 위한 뮤직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한편, 지역 예술인을 위한 창작 공간과 개방형 연습 공간도 제공하며 지역 문화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2020년 기준 서구의 공공도서관은 시립도서관 1곳과 구립도서관 5곳을 합해 모두 6곳이며, 좌석 수는 1,885석, 보유 도서는 42만 9467권[비도서 및 연속간행물 제외]으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곳은 1992년 12월 23일 평리3동에 개관한 대구광역시립서부도서관이다. 서구 전체 도서관 장서의 약 70%가 이곳에 비치되어 있으며, 2020년 기준 방문자 수는 20만 명에 달하였다.
구립도서관 중에서는 서구어린이도서관의 규모가 가장 크다. 2020년 방문자 수는 약 2만 4000명이었으며, 2023년 기준 소장 도서는 5만 4623권이다. 또한 2024년 2월 5일 평리동에 여섯 번째 구립도서관인 뉴평리도서관이 개관하였다. 옛 대구보건대학교 기숙사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건립된 이 도서관은 휴식과 독서를 겸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개관 당시 장서는 1만 2691권이다.
대구광역시 무형유산인 날뫼북춤[1989년 지정]은 비산동 일대에서 전승되어 온 북춤이다. 조선 후기 비산동 원고개를 중심으로 이어져 온 것으로 추정되며, 옛날 지방 관리가 순직했을 때 백성들이 이를 추모하기 위하여 봄 · 가을에 북을 치며 춤을 추고 제사를 지낸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날뫼북춤은 북을 연주 악기로 사용하고, 경상도 특유의 덧배기 가락[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추는 것이 특징이다.
대구광역시 무형유산인 천왕메기[1989년 지정]는 비산동 일대에서 예로부터 신으로 모셔 온 기천왕, 중천왕, 말천왕에게 매년 음력 정월에 올리던 지신풀이이다. 약 400년 전 이 지역에 가뭄과 돌림병이 들어 많은 사람이 죽어 가자, 마을 사람들이 매년 정초에 제물을 바치고 천왕제를 지내는 풍습이 생겨났다.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며 천왕목과 사당, 조산 등 제의 장소는 사라졌으나 천왕메기 춤사위는 전승되었으며, 사당 앞마당에서 흥겨운 가무와 함께 판굿으로 마무리되는 마을굿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서구를 배경으로 전해지는 설화 가운데 하나는 비산동의 「까치의 은혜 갚음」이다. 구렁이에게 잡아먹힐 뻔한 까치를 구해 준 선비가 잠을 청하던 중 다시 구렁이에게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으나 까치가 스스로 목숨을 바쳐 선비를 구해 주었고, 아침이 되어 그 사실을 알게 된 선비가 까치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는 동물의 보은에 대한 설화이다.
또 다른 설화는 비산동의 청어샘(靑魚泉)과 관련되어 있다. 달서천 부근의 우물가에 살던 가난하지만 마음씨 고운 과부가 귀한 손님을 대접하려 우물물을 길어 올릴 때마다 손님 수만큼의 청어가 담겨 나와 정성껏 대접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로, 이 역시 이웃과 손님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보여 주는 이야기이다.
비산동 지명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진다. 옛날 한 여인이 달천(達川)에서 빨래를 하고 있을 때, 서쪽에서 커다란 산이 날아와 달천을 막 넘어가려 하였다. 이때 여인이 놀라서 “산이 날아온다”라고 크게 외치자 산이 그 자리에서 멈추어 내려앉았고, 평지였던 곳이 산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후 사람들은 이 산을 ‘날아온 산’이라 불렀으며, 마을 이름도 ‘비산동(飛山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미륵지 전설」은 중리동 미륵지(彌勒池)를 배경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어느 겨울밤, 이수석이라는 사람의 꿈에 못을 지키는 미륵이 나타나 자신이 방치되고 버려져 있다고 하소연한 뒤 사라졌다. 이튿날 그는 못가에서 흙에 파묻혀 있던 미륵 부처를 찾아내 아침저녁으로 정성을 다해 치성을 드렸다. 이후 이수석은 큰 부자가 되었고, 후손들 또한 번창하게 되었다고 한다.
평리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설화로 배신하는 인간과 은혜 갚은 짐승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한 영감이 소나기로 불어난 물에 휩쓸려 떠내려오는 아이와 구렁이, 고양이를 구해 주었다. 이후 고양이는 엽전을 물고 와 보은을 하였으나, 이를 본 아이가 돈 욕심에 영감을 죽이려고 하자 구렁이가 아이를 물어 죽임으로써 영감에게 은혜를 갚았다는 이야기이다.
상리동에는 와룡산 약수터와 관련한 설화가 전한다. 지금의 무학사(無學寺) 터에 나병 환자인 동생과 형이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밤새도록 천둥이 쳤던 산으로 가 보니 땅이 파여 웅덩이가 돼 있었고, 그 안에 황 덩어리가 있었다. 형이 그 황을 집으로 가져와 물과 으깨서 동생의 환부(患部)에 발랐는데, 나병이 거짓말처럼 완치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지역에서 불리는 대표적인 민요로는 동부민요[대구광역시 무형유산, 2016년 지정]가 있다. 본래 동부민요는 함경도, 강원특별자치도, 경상도 및 동해안 일대에서 전승되는 민요를 통칭한다. 보유자인 박수관(朴水觀: 1955~)이 전승하는 동부민요에는 「백발가」, 「영남모노래」, 「상여소리」, 「치이야 칭칭나네」, 「장타령」 다섯 곡이 있으며, 음악적 · 문학적 · 민속학적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서구의 산업 고용구조를 살펴보면, 사업체 수 기준으로는 도 · 소매업이 가장 많고 그 뒤를 제조업과 숙박 · 음식점업이 잇는다. 그러나 고용자 수로 보면 제조업 종사자가 가장 많아 여전히 제조업이 주요 고용 기반임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산업구조의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2011년 이후 제조업은 사업체 수는 늘었으나 종사자 수는 꾸준히 감소해 개별 업체 규모가 축소되는 경향을 보였다. 운수 · 창고업과 숙박 · 음식점업도 비슷하게 업체 수는 증가했지만 고용은 줄어드는 추세이다. 반면에 도 · 소매업은 같은 기간 사업체와 고용이 모두 꾸준히 늘어났으며, 건설업은 2011년 544개 업체, 종사자 2,480명에서 2021년 1,764개 업체, 종사자 4,920명으로 크게 증가해 산업구조 내 비중이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서구의 산업 고용구조가 제조업 중심에서 도 · 소매업과 건설업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서구의 주요 산업은 여전히 섬유산업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이다. 특히 서구에는 대규모 산업단지인 서대구산업단지와 대구염색산업단지가 위치해 있다. 서대구산업단지는 1978년 도시계획에 의해 상리동과 중리동에 지정된 임의 공단으로, 시내에 흩어져 있던 공장들을 이곳으로 집단 이주시켰으며, 2021년 현재 2,674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대구염색산업단지는 염색 전용 산업단지로, 1980년 평리6동에 조성되어 2021년 기준 127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다.
주요 상업시설로는 비산동에 대형마트인 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 비산점이 있다. 전통시장은 모두 11개소로, 총면적은 5만 2473㎡이며, 점포 수는 1,435개이다. 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곳은 비산2·3동에 있는 서부시장으로, 총면적 2만 528㎡에 504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서구는 상리동에 서대구IC가 설치되어 있어 이를 통해 경부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광주대구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등 4개 고속도로가 연결되며 대구광역시 중서부의 관문 역할을 한다. 또한 대구 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이 운행되고 있고, 2022년 KTX 서대구역이 개통되며 광역 교통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어, 향후 대구광역시의 부도심 역할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서구 비산동에 위치한 대구북부시외버스터미널은 1975년 1월에 완공되었다. 대구북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운행하는 노선은 주로 경상북도 북부 지역과 강원특별자치도 지역을 연결하고 있으며, 경주시, 포항시, 인천국제공항 방면으로 운행하는 노선도 있다.
서구의 대표적인 관광지는 크게 자연 지형을 활용한 명소, 역사 유적지, 도심 속 생태공원, 전통시장과 특화거리로 나눌 수 있다. 그 가운데 자연 지형을 활용한 명소로는 와룡산이 있다. 도심과 가까우며 산세가 완만해 접근성이 뛰어난 산이다.
역사 유적지로는 달성토성마을, 비산성당, 새방골성당 등이 있다. 새방골성당은 1888년(광무 2)에 건립된 대구 지역 최초의 성당이고, 비산성당은 1928년에 세워졌다. 성당 남쪽에는 청동기시대 유물과 함께 원고개길, 날뫼전설, 청어샘 등 비산동의 설화를 담은 벽화가 조성되어 있다. 비산동에 위치한 달성토성마을은 달성토성을 둘러싼 마을로, 굽이진 골목을 배경으로 매년 봄 ‘달성토성마을 골목축제’가 열린다.
도심 속 생태환경 관광지로는 그린웨이, 서구청 옥상생태공원, 이현공원, 평리공원이 있다. 그린웨이는 대구서평초등학교 앞에서 대구의료원 입구까지 약 7㎞에 걸쳐 이어지는 정원형 녹지 공간이다. 이현공원은 잔디광장과 생태연못으로 꾸며져 있으며, 평리공원은 산책로와 체육시설을 갖춘 도심 속 휴식 공간으로 지역 주민들이 즐겨 찾는다. 서구청 옥상생태공원은 도시 열섬 현상을 완화하기 위하여 조성된 생태 학습 체험 공간이다.
특화거리로는 퀸스로드 의류패션명물거리, 큰장길 침구류명물거리, 원대가구 명물거리와 인동촌 아나고골목, 중리동 곱창마을, 반고개 무침회골목, 서부오미가미거리 등이 있다. 특정 음식이나 생활용품을 주제로 상권이 형성된 이들 거리는, 가구 · 침대 · 패션 같은 전통 상업 기능과 함께 새로운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구에는 내당1동, 내당2·3동, 내당4동, 비산1동, 비산2·3동, 비산4동, 비산5동, 비산6동, 비산7동, 평리1동, 평리2동, 평리3동, 평리4동, 평리5동, 평리6동, 상중이동, 원대동 등 17개 행정동과 9개 법정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