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호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개항기
조선 후기에, 경상도관찰사,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수재(修齋)
  • 치현(稚賢)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청풍(淸風)
  • 사망 연도1884년(고종 21)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06년(순조 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민영 (인하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1월 19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경상도관찰사,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치현(稚賢), 호는 수재(修齋). 황주목사(黃州牧使) 김진교(金晉敎)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43년(헌종 9) 식년문과에 병과로, 1846년 문과중시에 을과로 각각 급제한 뒤 부교리(副校理)로 출사(出仕)하였다. 1850년(철종 1)에는 당시 민란이 빈발하던 경상좌도의 암행어사가 되어 예천 · 흥해(興海) · 양산 · 장기(長鬐) · 안동 · 동래 등지의 탐관오리들을 숙청하였다.

그 뒤 사간원대사간 · 이조참의 · 이조참판을 거쳐 1869년(고종 6)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그 동안 저지대에 위치하여 수해가 잦았던 영일현과 진보현의 읍치(邑治)를 고지대로 옮기고, 포항진(浦項鎭)을 복설하는 대신 청천진(晴川鎭)을 폐치, 해안방비체제를 강화하는 등의 치적을 남겼다.

그러나 1874년 민정의 규찰을 태만히 하고 훈도 안동준(安東晙)과 공모하여 변흔(邊釁)을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경상도 암행어사 박정양(朴定陽)의 탄핵을 받아 중화(中和)로 유배되었다.

얼마 뒤 노모의 간절한 정성으로 향리로 추방된 다음 1879년 방면되었다. 이듬해 다시 기용되어 한성부판윤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논어석의(論語釋疑)』 · 『강화설제편(講話說諸篇)』 등이 있다.

참고문헌

  • - 『철종실록(哲宗實錄)』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 주2

    : 중시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 주3

    : 중화 유배 : 『고종실록』 12권, 1875년(고종 12) 1월 21일. "관청과 백성을 돈을 빼앗은 평안도 전전 병사 채동건을 중화부에 정배하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