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사헌부대사헌, 이조참판, 봉상사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74년에는 진하사(進賀使) 이승응(李昇應)을 수행하는 서장관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에도 진위 겸 진향정사(陳慰兼進香正使) 강난형(姜蘭馨)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82년에는 검교직각(檢校直閣)으로 고종의 자문에 수시로 응하였다.
1883년 이후에는 예조참의 · 이조참의를 역임하였으며, 1887년에는 태인(泰仁)으로 귀양을 가기도 하였으나 바로 풀려나 우부승지 · 사헌부대사헌 · 이조참판이 되었다.
그리고 1897년 중추원일등의관(中樞院一等議官) 및 칙임관3등(勅任官三等)에 이르렀으며, 이듬해에는 봉상사제조(奉常司提調)가 되어 전주 자만동비문(滋滿洞碑文)의 서사관(書寫官)이 되기도 하였다. 강찬은 1900년에 궁내부 특진관에 임명되었다가 1901년에 면직되었다.
참고문헌
- 『고종실록(高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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