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강세황(姜世晃)의 5세손으로, 강기(姜기)의 손자이며 강준수(姜駿秀)의 아들이다.
1871년(고종 8) 정시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71년 홍문관부교리와 수찬(修撰)을 거쳐 1872년에는 규장각직각이 되었다.
1874년에는 진하사(進賀使) 이승응(李昇應)을 수행하는 서장관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에도 진위 겸 진향정사(陳慰兼進香正使) 강난형(姜蘭馨)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82년에는 검교직각(檢校直閣)으로 고종의 자문에 수시로 응하였다.
1883년 이후에는 예조참의·이조참의를 역임하였으며, 1887년에는 태인(泰仁)으로 귀양을 가기도 하였으나 바로 풀려나 우부승지·사헌부대사헌·이조참판이 되었다.
그리고 1897년 중추원일등의관(中樞院一等議官) 및 칙임관3등(勅任官三等)에 이르렀으며, 이듬해에는 봉상사제조(奉常司提調)가 되어 전주 자만동비문(滋滿洞碑文)의 서사관(書寫官)이 되기도 하였다. 강찬은 1900년에 궁내부 특진관에 임명되었다가 1901년에 면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