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독립협회와 황국협회가 충돌한 뒤 그 세력이 양분되어 대치되었을 때 민용호가 이러한 분쟁을 조정, 그 공으로 공사원(公事員)에 임명되어 평안도의 공장(公掌)을 독려, 시무하였다는 내용 및 ‘정륜편(正倫篇)’을 간행하여 서북지역의 미개한 풍속을 바로잡고 정륜명사원제(正倫明査員制)를 실시하여 민중을 교화시키는 데 힘쓴 일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강북관리(江北管理)를 겸할 당시에 만주의 통화(通化)·회인(懷仁) 등지에 거주하는 강북유이민(江北流移民)의 수적(收籍)·호세(戶稅) 등 한중간의 분쟁문제를 해결한 사실과, 이 지역에다 배한사(拜韓社)·연화사(延化社) 등 16개의 자치기구를 만들어 한인의 권익옹호와 생활안정에 기여한 사실도 기록되어 있다.
더욱이, 이 자료는 의화단사건 때의 한인(韓人)의 동향과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한 제천의진(堤川義陣)의 만주지역에서의 의(義)를 지키는 생활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어 한말의 항일운동사 및 만주유이민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1985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한국사료총서 제30으로 간행한 ≪관동창의록≫에 부본(附本)으로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