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뒤 고종조에 들어와 다시 기용되어 좌부승지 · 성균관대사성 · 이조참의 · 사헌부대사헌 등을 두루 역임한 뒤 1873년 형조판서에 올랐으며, 1875년에는 청나라의 목종이 죽자 진위 겸 진향정사(陳慰兼進香正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한편, 1872년 상시관(上試官)으로 있을 때 당년 과거시험장의 기강이 해이해져 사회적인 물의가 일어나자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사헌부대사헌으로 있던 1876년에는 언사(言辭)를 함부로 하여 체모를 실추시킨 죄로 파직되기도 하였으나, 곧 한성부판윤으로 다시 기용되었다. 그뒤 1879년에는 황해도관찰사가 되었다.
참고문헌
- 『철종실록(哲宗實錄)』
- 『고종실록(高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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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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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생원시급제 : 『숭정기원후4계묘식 사마방목(崇禎紀元後四癸卯式 司馬榜目)』(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B13LB-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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