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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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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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
개념
토기 및 도자기 등을 구워 내는 시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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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토기 및 도자기 등을 구워 내는 시설물.
내용

선사시대에는 가마시설이 없어 노천에 토기를 쌓아놓고 그 주위에 나무를 쌓아 그릇을 구워냈는데, 대략 섭씨 500∼600°의 낮은 온도에서 구웠으므로 산소 공급이 많아져 토기 속의 철분이 산화되어 붉은색을 띠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천요(露天窯)로는 고열을 낼 수가 없어, 석기(炻器 : 화로 · 병 등에 쓰이는 도자기의 하나) · 도자기 등을 만들기 위해서는 통풍을 조절하여 고온을 낼 수 있는 지붕을 가진, 움집같은 실요(室窯)와 언덕의 경사면에 길게 만들어진 터널형의 등요(登窯)가 발달하게 되었다.

등요는 다시 내부에 격벽을 여러 개 둔 연실(連室)형식으로 발전되었으며, 실요는 중국에서는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나타나고, 은대에 이르러 석기가 만들어지는 바탕이 되었다. 한대에 이르면 등요도 보급되어, 한사군이 설치된 서기 전후 무렵에 우리 나라에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의 토기는 이러한 등요를 모체로 발전되어 섭씨 1,100°이상의 고온에서 환원번조할 수 있는 가마에서 만들어진 회흑색의 경질토기였다.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의 토기가마는 1987년 3월에 발굴조사된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산수리가마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산북리가마를 들 수 있다.

진천 산수리가마의 경우 소형가마와 대형가마 등 7개가 발견되었는데, 소형가마는 길이 3m 내외에 최대 너비 1∼1.5m의 작은 가마들로, 소성실(燒成室) 앞쪽에 지하식 아궁이가 달렸으며, 소성실 바닥은 약 15°의 경사면으로 된 반지하식 등요였다.

대형가마는 길이 7, 8m, 최대너비 3∼3.5m 내외의 큰 가마들로, 앞쪽이 없고 뒤쪽으로 가면서 차츰 좁아졌다. 바닥은 20°내외의 경사면으로 되어 있고, 최대 높이는 2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하에 굴을 판 뒤 그 벽을 따라 점토로 벽을 쌓았으며, 바닥도 점토를 깐 지하굴식의 등요였다.

이러한 지하실식의 등요가 통일신라시대를 거치면서 반지하 · 반지상의 등요로 발전되어감은 경상북도 경주시 천북면 일대의 덕산리 · 망성리에서 발견된 가마에서 볼 수 있다.

고려시대의 청자가마는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일대의 경우 10, 11세기의 가마자리는 해안에서 좀 멀고 경사가 급한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마의 규모도 작았으나, 12, 13세기 무렵에는 점차 해안에 가깝고 경사가 완만한 산기슭으로 옮겨지고, 14세기에는 보다 해안에 가깝고 경사가 완만한 구릉으로 옮겨지며 가마의 규모는 커지고 있다.

초기의 대표적인 녹청자요(綠靑磁窯)로 알려진 인천광역시 북구 경서동요지의 경우, 가마는 자연경사를 이용한 3, 4°경사의 등요로, 내부는 칸이 없는 통가마였다.

가마의 너비는 1.2m 내외이고, 현존하는 가마의 길이는 7.3m였으며, 가마의 바닥은 세 차례의 개수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지하로 더 깊이 묻었으나 점차 위로 올라갔으며, 경사진 바닥을 도지미로 수평을 유지하였다.

12, 13세기의 가마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하여 발굴조사된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가마는 남북향으로 경사도가 약 13°이며, 가마의 봉통(아궁이)과 가마천장 · 가마벽 등이 잘 남아 있었다.

가마의 길이는 약 8.4m, 가마바닥의 너비는 1.2m, 높이는 1.05m였다. 아궁이에 불을 때는 입구의 좌우기둥은 완형의 갑발(匣鉢)을 차곡차곡 포개어 쌓았으며,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졌다.

아궁이 앞은 U자형으로 아궁이를 향하여 석축을 쌓았으며, 아궁이 앞바닥은 밑으로 약간 경사져 있었다. 아궁이의 바로 옆쪽에 판석으로 세 면을 둘러막은 석실이 있으며, 이 석실 안의 판석 표면은 불먹은 흔적이 나 있었다.

가마아궁이 앞에는 원래의 가마아궁이가 있었던 벽면과, 아궁이 좌측에 원래의 석실이 뒤에 만들어진 석실과 비슷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가마 좌우의 벽면은 유약이 두껍게 녹아 흑갈색을 띠고 있고, 가마벽 우측으로는 너비 40㎝ 크기의 출입구가 있었으며, 가마벽 좌측으로는 화창(火窓)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가마바닥에는 고동색의 가는 모래가 깔려 있었고, 경사진 가마바닥의 수평을 유지하기 위하여 갑발을 엎어 괴어서 수평을 유지하였다.

조선시대의 가마로는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의 분청사기가마와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번천리에서 발굴조사된 백자가마가 있다.

학봉리의 가마는 산기슭의 경사면에 여러 개를 나란히 축조하였고, 모두 지면을 약간 파서 기다란 구덩이를 만들고 그 좌우 위턱으로부터 진흙으로 벽과 천장을 둥글게 쌓아올렸다. 모두 칸막이 가마로 칸마다 출입구가 오른쪽에 있고, 가마바닥은 모래를 깔았다.

광주 번천리가마의 구조는 2개의 아궁이를 포함하여 총 17m의 길이이며, 너비는 1.7∼2.2m에 이른다. 가마의 경사는 약 12°이며, 가마바닥에 둥근 도지미를 깔았다. 아궁이는 가마너비와 같은 너비로 넓고, 아래가 점차 좁아지는 변형 타원형으로 길이 3.4m, 너비 1.8m, 깊이 0.6m의 규모로 2개의 봉통은 형태와 크기가 동일하다.

봉통입구는 2개의 돌과 진흙으로 50㎝ 너비의 아궁이문을 구축하였으며, 굴뚝은 파괴되어 그 구조를 알 수 없다. 이들 조선시대 가마는 16세기 무렵의 가마로 추정되었는데, 후기로 갈수록 가마의 규모가 커지며 계단식의 경사진 칸가마로서 발전되어 간다.

오늘날에는 전통적인 등요 외에도 가스가마 · 기름가마 · 전기가마 등이 현대적인 구조로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가마의 종류와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등요(tunnel kiln) :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는 가마로 지방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가마의 경사도는 약 20°정도이며, 제일 아랫부분에 아궁이가 있고, 그 다음부터 둥근 형태의 기물을 넣을 수 있는 방이 4∼10개 정도 있으며, 맨 위쪽에 굴뚝을 설치하였다.

소성 방법은 아궁이에 불을 때면, 다음 칸으로 이어가는 벽에 여러 개의 구멍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곳을 통하여 제1실로 불이 옮겨져 도자기가 익어가면서 나머지 열은 다시 제2실로 옮겨지는데, 이렇게 차례로 제3실 · 제4실로 옮겨가며 소성하는 것이다. 연료는 거의 소나무를 쓴다.

② 가스가마(gas kiln) : 가마 표면을 철판과 금속앵글로 견고하게 상자로 만들고, 내부는 단열벽돌을 쌓았으며, 천장은 무지개모양으로 둥글게 하였다. 버너는 양옆과 밑바닥에 4개씩 8개가 설치되었으며, 가마의 크기에 따라 더 많이 부착된다.

굴뚝의 위치는 보통 불이 벽을 타고 천장까지 올라갔다가 기물 사이를 통과하여 가마 밑바닥 구멍으로 빠져 가마 입구 반대쪽으로 나가게 설치되었다.

또, 굴뚝 아랫부분에는 소성분위기를 조절하는 댐퍼(damper)가 있어, 이것이 구멍을 만들어 이동식 벽돌을 놓고, 벽돌의 위치를 움직임으로써 산소의 양을 조절하여 완전연소 또는 불완전연소를 만들어 산화소성 · 환원소성 등의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이러한 가스가마는 최근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사용하기가 편리하고 연기가 전혀 나지 않으며, 환원소성 · 산화소성 등 조절이 편리하여 잘 소성된다.

③ 기름가마(oil kiln) : 가마의 형태는 가스가마와 같으나, 버너를 모터로 회전시켜야만 하기 때문에 전기가 필요하다. 기름가마는 연료가 싸고 화력도 좋아 매우 경제적이어서 가스가마와 같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 밖에도 전기가마 등이 사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고고학미술사용어자료』(한국고고미술연구소, 1979)
『한국의 미술』1-신라토기-(김원룡, 열화당, 1981)
『도예의 기초』(임무근, 미진사, 1983)
『도자공예』(서길룡, 창미사, 1984)
『광주조선백자요지발굴조사보고』(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한국도로공사, 1986)
『진천산수리백제토기요지발굴조사약보』(한남대학박물관,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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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윤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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