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일대에 있는 조선시대 철회분청사기와 백자를 굽던 가마터.
개설
내용
그리고 이들 요지에서 수집되는 상감청자 조각 가운데는 국화무늬를 인화수법(印花手法)으로 찍은 고려 말기의 것도 있으며 15세기 중엽경의 인화분청을 비롯하여 귀얄분청, 철회분청을 제작하던 요지도 모두 18개소에 달한다. 특히 철회분청은 전국에서 이곳 계룡산 기슭의 학봉리 일대에서만 발견되어, 계룡산 도자기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계룡산 철회분청의 특징은 다른 지방의 분청사기와 쉽게 구별될 만큼 바탕흙〔胎土〕이 거칠고, 철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어두운 암녹색 · 암갈색 · 쥐색 등으로 보이며, 대체로 미세한 유빙렬(釉氷裂)이 많이 나 있다. 굽은 몸체에 비하여 좁아 안정감이 적으며 그릇 모양은 둔하고 세련되지 않으나, 백토의 귀얄자국과 철회문의 활달하고 자유스러운 생략의 효과는 시대를 초월한 개성을 느끼게 한다.
그릇의 종류는 대접, 접시, 반(盤), 발(鉢), 작은 호(壺), 술병, 제기, 향로, 장군, 주전자, 묘지석, 작은 병 등 다양하며, 문양은 국화무늬, 연꽃무늬, 초엽무늬, 수초(水草)무늬, 물고기무늬, 새무늬 및 변화된 당초문, 재구성된 물고기무늬 등이 많이 사용되었다. 번조(燔造)방법은 굵은 모래받침으로 포개어 구웠으며, 일반 서민들의 생활용 그릇들이 다량 생산되었다.
1925년에서 1926년에 걸쳐 이 일대의 도요지를 발굴조사하여 1927년에 간행한 「계룡산녹도요지조사보고서(鷄龍山麓陶窯址調査報告書)」에 따르면, 가마는 산기슭의 경사면에 여러 개가 나란히 축조되었으며 구조는 모두 지면을 약간 파서 기다란 구덩이를 만들고, 구덩이의 좌우 위턱에서부터 진흙으로 벽과 천장을 둥글게 쌓아올렸다. 그리고 모두 칸막이 가마로, 칸마다 아궁이를 겸한 출입구가 오른쪽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바닥은 모래바닥이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世界陶磁全集』-李朝-(東京 : 小學館, 1980)
- 『昭和二年古蹟調査報告書』(野守健, 朝鮮總督府, 192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