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4,370㎡. 이 가마터는 10여기 이상의 기와가마가 유존하고 있는 대단위 가마단지로서, 제1호요(第一號窯)인 가마 1기(基)가 발굴 조사되어 그 형태와 구조, 그리고 조업 연대 등을 밝힐 수 있었다.
가마의 형태는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는 구릉사면을 옆으로 파 들어가 구축한 지하식굴가마로서 아궁이와 연도(煙道)를 잇는 가마의 주축(主軸)이 W-15°-E 방향이다. 가마는 잔존 길이가 10.5m이고 소성실(燒成室)의 최대 너비가 1.74m 가량인 큰 규모인데, 연소실의 측벽과 소성실의 천장 일부가 남아 있을 뿐 아궁이와 연도는 이미 파손되었다. 그런데 소성실의 앞쪽에는 단(段)이 하나만 낮게 형성되어 있는 계단식가마로 소성실 바닥의 경사도가 25°정도로 매우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가마에서 생산된 제품은 암 · 수키와와 막새, 그리고 민무늬전돌[無文塼] 등인데 아직까지 그 수급관계(需給關係)가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10여기 이상의 가마가 분포하고 있는 대단위 가마단지로서 조업 활동이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조업 연대는 정확히 파악되고 있지 않으나 제1호요에서 출토된 ‘건륭(乾隆)…’명 암막새의 연호(年號)를 통하여 제1호요의 조업은 18세기경에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각 가마에 대한 세부적인 발굴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폐요(廢窯)시기와 출토유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미흡한 점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