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비석은 1737년(영조 13) 2월에 건립된 것으로 원래는 남문밖 관덕정지(觀德亭址)에 있었다.
1906년(고종 10) 당시 대구군수(大邱郡守) 박중양(朴重陽)이 대구읍성(大邱邑城)을 헐고 도로를 만들면서 옛 달성군청(현재 대구백화점)에 옮겼다가, 이를 다시 1932년에 대구향교(大邱鄕校)에 이전 보관되어 오다가 1980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져 보존되어 있다.
1735년(영조 11)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 겸 대구도호부사(大邱都護府使) 민응수(閔應洙)가 토성(土城)인 대구읍성(大邱邑城)을 석성(石城)으로 개축하였는데, 공사 완료 후에 이를 기념하여 세운 축성비이다.
이 비문에 의하면 1월 8일에 체성(體城)이 이루어졌고 6월 6일에는 2,145보의 여장(女墻: 성가퀴. 성 위에 활 또는 조총을 쏘는 구멍이나 사이를 띄어 쌓은 작은 성벽)과 동서남북 사방의 성문(城門)이 완성되었다고 하였다.
성벽 높이는 서남쪽이 18척, 동북쪽은 17척이었다는 등 석성의 준공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비문(碑文)은 민응수(閔應洙)가 짓고, 글씨는 백상휘(白尙輝)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