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영남제일관문 앞에 있는 조선후기 대구읍성 개축을 기념하여 건립한 축성비.
내용
1906년(고종 10) 당시 대구군수(大邱郡守) 박중양(朴重陽)이 대구읍성(大邱邑城)을 헐고 도로를 만들면서 옛 달성군청(현재 대구백화점)에 옮겼다가, 이를 다시 1932년에 대구향교(大邱鄕校)에 이전 보관되어 오다가 1980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져 보존되어 있다.
1735년(영조 11)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 겸 대구도호부사(大邱都護府使) 민응수(閔應洙)가 토성(土城)인 대구읍성(大邱邑城)을 석성(石城)으로 개축하였는데, 공사 완료 후에 이를 기념하여 세운 축성비이다.
이 비문에 의하면 1월 8일에 체성(體城)이 이루어졌고 6월 6일에는 2,145보의 여장(女墻: 성가퀴. 성 위에 활 또는 조총을 쏘는 구멍이나 사이를 띄어 쌓은 작은 성벽)과 동서남북 사방의 성문(城門)이 완성되었다고 하였다.
성벽 높이는 서남쪽이 18척, 동북쪽은 17척이었다는 등 석성의 준공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비문(碑文)은 민응수(閔應洙)가 짓고, 글씨는 백상휘(白尙輝)가 썼다.
참고문헌
- 『대구시사』5(대구시사편찬위원회, 1995)
- 『문화재도록』(대구직할시, 1987)
- 『대구의 향기』(대구직할시, 1982)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