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남대천(南大川)의 하류에 위치하며 이 성곽으로 인하여 토성리(土城里)라는 마을 이름이 생기게 되었으며 『대동여지도』에도 ‘토성리’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부르던 호칭임을 알 수 있다.
성벽은 전체 길이가 약 1㎞이나 경작 등의 인위적인 파손과 재료의 취약점으로 인하여 심하게 훼손된 상태이다. 성벽의 잔존한 높이는 10m이고, 하부너비 약 9m, 상부너비 약 4m이다.
농경지로 개간하면서 성벽의 흙을 운반하여 가서 현재는 서벽 약 150m, 남벽 10m, 높이 5∼6m가량만 남은 상태이다. 성벽의 전체적인 평면구조는 방형(方形)이고 평지성(平地城)인 점으로 보아 읍성(邑城)의 성격이 짙다.
성내에서는 무문토기편과 석기류 등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많이 출토되고 있어서 축성되기 이전에 주거생활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선사시대에 축성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며 축성법으로 보아 삼국시대 또는 그 후대에 축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에 청나라 장수 마부대(馬夫大)와 용골대(龍骨大)가 수 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한양으로 침공하였다. 이 때 평안관찰사(平安觀察使) 홍명구(洪命耉)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유림(柳琳)이 포위하고 공격하자, 청나라 군대는 하루만에 성을 쌓은 것이 이 성곽이라는 전설이 있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쌓은 것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