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토성 및 석조물 ( )

목차
관련 정보
철원토성
철원토성
건축
유적
문화재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갈말면 토성리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 축성된 읍성으로 추정되는 성곽. 토성 · 청동기유물.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철원 갈말읍 토성(鐵原 葛末邑 土城)
지정기관
강원도
종목
강원도 시도기념물(1977년 11월 28일 지정)
소재지
강원 철원군 갈말읍 토성리 273-3번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갈말면 토성리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 축성된 읍성으로 추정되는 성곽. 토성 · 청동기유물.
내용

1977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남대천(南大川)의 하류에 위치하며 이 성곽으로 인하여 토성리(土城里)라는 마을 이름이 생기게 되었으며 『대동여지도』에도 ‘토성리’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부르던 호칭임을 알 수 있다.

성벽은 전체 길이가 약 1㎞이나 경작 등의 인위적인 파손과 재료의 취약점으로 인하여 심하게 훼손된 상태이다. 성벽의 잔존한 높이는 10m이고, 하부너비 약 9m, 상부너비 약 4m이다.

농경지로 개간하면서 성벽의 흙을 운반하여 가서 현재는 서벽 약 150m, 남벽 10m, 높이 5∼6m가량만 남은 상태이다. 성벽의 전체적인 평면구조는 방형(方形)이고 평지성(平地城)인 점으로 보아 읍성(邑城)의 성격이 짙다.

성내에서는 무문토기편과 석기류 등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많이 출토되고 있어서 축성되기 이전에 주거생활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선사시대에 축성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며 축성법으로 보아 삼국시대 또는 그 후대에 축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에 청나라 장수 마부대(馬夫大)와 용골대(龍骨大)가 수 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한양으로 침공하였다. 이 때 평안관찰사(平安觀察使) 홍명구(洪命耉)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유림(柳琳)이 포위하고 공격하자, 청나라 군대는 하루만에 성을 쌓은 것이 이 성곽이라는 전설이 있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쌓은 것이 확실하다.

참고문헌

『철원군의 역사와 문화유적』(강원대학교박물관, 1994)
『강원문화재대관』(강원도, 1993)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박방룡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