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박중양은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칙선의원 등을 역임한 관료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74년(고종 11)에 태어나 1959년에 사망했다. 조선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수양아들이다. 1897년에 관비장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군의 통역관으로 러일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의친왕의 통역 수행원으로 일본을 방문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중추원 참의, 황해도 지사, 충청북도 지사 등을 역임했다. 조선유도연합회 평의원,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고문 등 친일 활동에 가담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칙선의원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10년부터 1915년까지 충청남도 장관을 거쳤다. 1915년부터 1921년까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1914년에는 충청남도 지방토지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으며, 1918년 5월 대구상업회의소 특별평의원으로 활동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할 목적으로 대구에서 자제단을 조직하고 단장을 맡았다. 1921년 황해도 지사에 임용되었으며, 1923년부터 1925년까지 충청북도 지사를 역임했다. 1927년부터 1939년까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1935년판 『조선공로자명감(朝鮮功勞者銘鑑)』에 의하면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식민통치 25년간 최고의 공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1938년 조선총독부 시국대책조사위원회 위원이 되어 총독의 자문사항을 심의했다. 1941년부터 1943년까지 중추원 고문, 1945년 8월까지 중추원 부의장을 지냈다.
1939년 11월 관변종교단체인 조선유도연합회 평의원, 1941년 부여신궁 공사 근로봉사에 참여했다. 이해 10월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의 고문으로 선임되었다. 1943년 1월에는 국민정신총력연맹의 참여를 맡았으며, 학병을 권유하는 연설대에 참여해 경남지방을 담당하기도 했고, 일본이 싱가포르를 점령하자 일본군을 위문하기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친일 활동의 결과, 1945년 4월 3일에 박상준(朴相駿) 등 6명과 함께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칙선의원으로 선임되었다.
해방 이후 1949년 1월 반민특별위원회에 의해 피의자로 검거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며칠 후 폐렴이 발생해 서울대학병원에서 몇 개월간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자유의 몸이 되었다. 1959년 4월 23일 사망했다. 일본정부로부터 1906년 서보장(훈6등), 1908년 서보장(훈5등), 1912년 한국병합기념장, 1923년 서보장(훈4등), 1915년 다이쇼(大正)대례기념장, 1919년 서보장(훈3등), 1928년 쇼와(昭和)대례기념장, 1931년 서보장(훈2등), 1935년 조선총독부 시정25주년 기념표창을 받았다.
박중양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2·4·8·9·11·17·19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7: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211∼259)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참고문헌
- 『고종실록(高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대한제국관원이력서(大韓帝國官員履歷書)』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7: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 『일제하 조선인관료 연구』(박은경, 학민사, 1999)
- 『친일파99인』 1(반민족문제연구소, 돌베개, 1993)
- 『실록 친일파』(임종국, 돌베개, 1991)
- 『친일파군상』(민족경제연구소, 삼성출판사, 1948)
- 『조선공로자명감(朝鮮功勞者銘監)』
- 『조선신사대동보(朝鮮紳士大同譜)』
- 『조선인사흥신록(朝鮮人事興信錄)』
- 『조선총독부급부속관서직원록(朝鮮總督府及所屬官署職員錄)』
- 『조선총독부시정25주년기념표창자명감』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4.9·1941.10.9·10.22·10.23·1941.6.5·1943.8.26·11.5·194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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