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7월 25일 일본 홋카이도대학 문학부 후루카와(古河)강당 인류학교실 구 표본고 정리 작업 중 사람의 두개골 6개가 발굴되었다. 6구의 두골 중 하나는 1906년 9월 전남 진도에서 일본인 사토 마사지로(佐藤政次郞)가 채집한 동학군 지도자 유골이었다.
두개골 방치 사건이 알려지자 홋카이도대학 문학부는 사건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후루카와강당구표본고인골문제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유골이 홋카이도대학에 반입된 경위 조사를 포함한 진상 규명을 시작하였다. 홋카이도대학에서 발견된 동학군 지도자 유골은 정부는 물론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등 국내 관련 단체와 연구자들의 유기적인 협력으로 1996년 5월 30일 국내로 봉환되었다.
방치된 동학군 유골은 40대의 한국인 남성으로 전남 진도 출신 지도자였음을 밝혀냈지만 어떤 경로를 거쳐 진도에서 홋카이도대학으로 반입되었는지는 밝혀내지 못하였다. 동학군유골방치사건은 식민지시대 일제가 인골을 조사연구대상으로 삼았으며, 그 수집 및 반출 과정이 또 하나의 수탈이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