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6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자는 경오(景五), 아버지는 의정부대신 민경호(閔璟鎬)이다.
1875년(고종 12) 별시문과에 급제해 주서(注書)에 임명됐으며, 이후 설서(說書)·전적(典籍)·병조정랑(兵曹正郎)·서학교수(西學敎授)·수찬(修撰)·문겸(文兼)·금위영종사관·헌납(獻納)·장령(掌令)·부교리(副校理)·응교(應敎) 등을 지냈다. 1876년 병조정랑, 1879년 병조참판, 1881년 이조참의, 1882년 형조참판·예조참판을 지냈다. 1885년 외관직으로 경주부윤으로 나갔다. 1888년 형조판서가 되었고, 1890년 예조판서·한성판윤을 역임하였다. 1892년 이조판서가 되었고, 경기관찰사로 외직에 나갔다가 1894년 병조판서가 되었다.
갑오개혁으로 김홍집내각이 들어서자 면직되었다가 1897년 궁내부대신으로 다시 기용되었다. 1906년 의정부 의정대신에 올랐으며, 1908년 대동학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1910년 일제강점 뒤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작위와 사금 5만 원을 받았다. 1905년 훈이등팔괘장(勳二等八卦章), 1906년 훈일등태극장(勳一等太極章), 1907년 대훈이화대수장(大勳李花大綏章)을 받았다.
민영규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7·19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5: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592∼603)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