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철 ()

남정철 필적
남정철 필적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한성판윤, 내부대신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칭
치상(穉祥)
하산(霞山)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40년(헌종 6) 4월 27일
사망 연도
1916년 6월 30일
본관
의령(宜寧)
출생지
서울
관련 사건
방곡령사건|조오수호통상조약 체결
정의
일제강점기 한성판윤, 내부대신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개설

1840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치상(穉祥), 호는 하산(霞山)으로 남홍중(南弘重)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82년 11월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로 임용되었다. 1883년 예조 참의, 텐진[天津] 주재 참찬관, 1884년 공조 참판, 텐진 주재 대원을 거쳐 이조 참판, 형조 참판, 호조 참판을 지냈다. 1884년 갑신정변으로 사은 겸 동지부사로 청국을 방문하여 한로수호통상조약(韓露修好通商條約) 비준사건의 양해를 구하는 고종의 친서를 북양대신(北洋大臣) 이홍장(李鴻章)에게 전달하고 동의를 얻었다.

1885년 한성부 우윤, 성균관 대사성을 거쳐 재차 톈진주차독리통상사무로서 임지에 다녀왔다. 이해 7월 평안도 관찰사에 발령되었다가 관찰사 재임 중의 치적이 높이 평가되어 임기가 1년 연장되었다. 1889년 대사헌을 거쳐서 이듬해 협판교섭통상사무(協辦交涉通商事務)·도승지·형조판서·예조판서·한성판윤 등을 역임했다. 1893년 4월 독판교섭통상사무(督辦交涉通商事務)가 되어 일본 변리공사(辨理公使) 오이시[大石正己]와 함경도·황해도의 방곡령사건으로 인한 배상문제를 협의하고 마무리했다. 이해 8월 오스트리아의 전권위원인 벡커(Becker)와 조오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1896년 7월 경성부 관찰사, 8월 함경북도 관찰사, 9월 의정부 찬정을 거쳐 1897년 1월 내부대신이 되었다. 이해 6월 사례국(史禮局)의 설치를 건의하고 위원이 되어 편집사무를 담당했으며, 7월 홍문관 학사를 겸임했다. 1898년 11월 궁내부 특진관, 1899년 11월 장례원경(掌禮院卿), 1902년 홍문관 학사·특진관 등의 관직을 1907년 초까지 중복 역임했다.

1907년 7월 고종 양위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으며, 8월 황태자 대리 동하행례식에 불참하여 태형에 처해졌다. 1908년 대한산림협회 명예회원으로 참여하였다가 1909년 기로소에 들어갔다. 1909년 12월 국민대연설회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1910년 6월 평화협회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일제강점 이후 1910년 10월 조선귀족령에 의해 일본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1911년 1월 2만 5000원의 은사공채를 수령했다. 1912년 8월 일본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문집으로 『하산고(霞山稿)』가 있다. 1916년 6월 30일 사망했다.

남정철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7·19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5: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39∼50)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순종실록(純宗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일성록(日省錄)』
『매천야록(梅泉野錄)』
『속음청사(續陰晴史)』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5: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1910.5.26·6.5·15·1911.1.14)
『문품안(文品案)』
『조선신사대동보(朝鮮紳士大同譜)』
『조선신사보감(朝鮮紳士寶鑑)』
『조선총독부관보(朝鮮總督府官報)』(1910.10.12·1916.7.6)
『황성신문(皇城新聞)』(1909.12.4·5)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성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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