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이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던 시점에서 전쟁에 협력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목적의 임전협력운동에는 친일시인 김동환(金東煥)이 주동하여 만든 1941년 8월의 임전대책협의회가 있었고, 또 하나는 윤치호(尹致昊)가 중심이 된 같은 시기의 흥아보국단(興亞報國團) 준비위원회가 있었다.
취지와 목적이 동일했던 두 단체는 당국과 국민총력조선연맹의 권고와 주선에 의해 창립 직후부터 통합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리하여 같은 해 9월 11일 경성호텔에서 흥아보국단의 윤치호 및 임전대책협의회의 최린(崔麟)과 기타 중심 인물들이 만나, 양측의 통합을 위한 연합위원회가 열렸다.
이들은 두 단체의 이름을 합쳐서 단체 명칭을 ‘조선임전보국단’으로 결정한 뒤, 10월 22일 서울 부민관에서 통합된 새 단체의 발회식을 가졌다. 그 강령·목적의 요지는 황민화사상 통일 및 전시하의 국책 협력 등이다.
초대 구성원의 중심은 단장 최린, 부단장 고원훈(高元勳), 고문 박중양(朴重陽)·윤치호·이진호(李軫鎬)·한상룡(韓相龍)과 전임이사 이성환(李晟煥) 등이며, 기타 각계의 중견 친일 분자를 총망라한 전국적 지부조직을 거느렸다.
1941년 12월 14일의 미영타도대강연회(장소는 부민관, 연사는 김동환·옥섬진·이광수·이돈화·이성환·주요한), 27일의 결전부인대회 (장소는 부민관, 연사는 김활란·모윤숙·박순천·박인덕·임숙재·임효정·최정희·채하백) 등을 개최하여 황민의식을 고취하면서 전국적으로 군수 자재 헌납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42년 2월부터는 산하 단체 임전보국단부인대 주최로 근로보국운동을 전개하면서 부녀층을 광범하게 동원한 군복수리작업을 벌였다. 조선임전보국단은 같은 해 11월 국민총력조선연맹이 조직을 전면적으로 개편 강화할 때 이 단체에 합류함으로써 발족 1년 만에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