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에 중국에서 조직된 친일단체.
개설
기능과 역할
이사장은 치과의사 고명천(高明天)이며, 기타 김수천(金壽天) · 곽덕영(郭德榮) · 장찬식(張贊植) · 정택근(鄭澤根) 외 수명이 주동급으로 참가하였다.
우한계림회의 활동은, ① 1941년 6월 16일부터 7월 7일에 걸쳐 한커우 일본인거류민단과 협력하여 일본군 위문금품을 모집하고, ② 그 해 10월 31일부터 4일간 장병위문연예대회 개최, ③ 그 해 9월 하순 중일친선을 위한 축구대회 주최, ④ 1942년 4월 19일 중산(中山)공원에서의 조선 징병제 실시 감사축하식을 거행한 것 등이다.
상해계림회는 1942년 9월 회원 174명을 두고 있었다. 우한계림회와 마찬가지로 영사관 · 특무 기관 · 일본인 거류민단 · 일본군 현지부대 등과 밀착해 있던 단체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본거지였던 상해에서 친일행위를 한 반민족 집단이다.
상해계림회는 중국 일원에서도 손꼽는 거물급 친일분자들이 간부급 핵심으로 활동하였다. 이사장 손창식(孫昌植)은 상해정밀기계공예(上海精密機械工藝) 사장으로, 일본군을 상대해 군수공업을 함으로써 거부가 된 사람이다.
동아신문사 감사역과 덕창연공창(德昌煙工廠) 이사를 겸하였으며, 상해조선인기독교회의 영수로 친일 총력보국회(總力報國會) · 충령회(忠靈會) 상해지방위원회 등에도 관계하였다.
상해계림회 수석급(首席級) 이사 이갑녕(李甲寧)은 일본 외무성 촉탁과 상해일본인 거류민단 촉탁, 그리고 상해계림청년단장과 상해극예술연구회장을 겸하였으며, 상해사변 때도 조선인 의용대를 결성해 진지 구축, 군수품 하역작업, 통역 · 간호 · 취사 등으로 일본군을 도왔던 사람이다.
이갑녕은 1937년 11월 상해 메두르스트 가로(Medhurst街路)의 한 카페에서 조선인 3명의 저격으로 부상까지 입은 적이 있었다.
상해계림회는 1942년 5월 8일 상해신사(上海神社)에서 일본 공사 · 영사 · 군보도부장 · 거류민단장 이하 군중 2,500명이 모여 ‘징병제실시 봉고제(奉告祭)’ 및 선서식을 가졌다. 그 밖에 일본군 위문, 노역 제공, 국방비 · 위문금 갹출, 중일친선행사 개최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참고문헌
- 「일제침략(日帝侵略)과 친일파(親日派)」(임종국, 『청사(靑史)』,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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