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887년에 로베르(Robert,A.P.) 신부가 대구 지역에 정착하였다. 이후 오랫동안 전교활동을 하다가 1897년 현재의 계산동성당의 대지를 구입하고 그곳에 있던 초가를 임시성당으로 사용하면서 성당신축을 계획하여 3년 만인 1899년 한식 목조 십자형의 성당을 신축하였으나, 1901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에 곧 재건계획에 착수, 프와넬(Poisnel) 신부가 설계하고, 함석·스테인드글라스 등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자재는 프랑스 및 홍콩에서 가져다가 사용하여, 당시 대구에서 서양식 건물로는 처음인 새 성당이 2년 동안의 공사 끝에 1902년에 준공되었다.
두개의 종각이 우뚝 솟아 ‘뾰족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뒤 1911년대구교구가 설정되어 주교좌성당이 되자 증축하지 않을 수 없어 종각을 2배로 높이고 성당 뒤쪽을 확장하여 남북으로 익사(翼舍)를 달아 1918년에 완공하여 오늘에 이른다.
성당건축은 순수한 고딕양식이라기보다는 고딕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양식이며, 평면은 라틴십자형의 삼랑식(三廊式)이다. 정면 출입구 양측에 두개의 종탑부가 있고 종탑부에는 각각 팔각의 높은 첨탑(尖塔)을 두었다.
화강석초석 위에 붉은 벽돌로 쌓고, 검은 벽돌의 이형(異形) 벽돌로 고딕적인 장식을 하였다. 이 성당은 대구지방의 유일한 1900년대 성당건축물이다. 1981년 9월 25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