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순서(舜瑞), 호는 호석(湖石). 충청남도 부여 출신. 진구(鎭求)·철구(銕求)·용구(鎔求)의 세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정교(正敎)와 대형(大兄)이란 호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고 1895년부터 9년간 함경북도 성진·길주·경원 등 세 곳의 감리(監理)를 역임하였다. 1909년 대종교가 조직되자 입교하였다. 1911년 지교(知敎), 1914년에는 상교(尙敎)로 승진되어 총본사의 총전리(總典理)로서 5년동안 교문의 최고행정책임자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1916년 정교(正敎)로 승질됨과 동시에 대형의 호를 받았으며, 1918년에는 교주를 제외하고는 최고위 직책인 사교(司敎)에 임명되었다. 1921년에 남도본사(南道本司)를 부설(復設)하고 도사교위리(都司敎委理)로서 3년간 시무하였다.
특히 신앙생활에 있어서, 1914년 교주인 나철(羅喆)을 대신하여 백두산 상봉에 올라 혈서로 제천하였고, 1920년에는 구월산 삼성사(三聖祠)에서, 1924년에는 마니산 참성단(塹城壇)에서 제천수도하는 등, 교문의 사표가 되었다.
교리연구에도 진력하여 『종리문답(倧理問答)』·『천산도설(天山圖說)』·『제천혈고사(祭天血告辭)』·『일삼경(一三經)』·『애오가(愛吾歌)』 등의 유저가 있다. 1950년 5월에 규범개정으로 도형(道兄)이란 호가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