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준

  • 종교·철학
  • 인물
  • 개항기
  • 현대
일제강점기 근대 양의학계의 선구자로 알려진 의사. 종교인.
이칭
  • 계평(季平)
  • 이칭김준(金準)
  • 내원(萊園)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경주(慶州)
  • 사망 연도1965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84년(고종 21)
  • 출생지서울특별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정신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근대 양의학계의 선구자로 알려진 의사. 종교인.

내용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평(季平), 호는 내원(萊園). 종교계에서는 김준(金準)으로 쓴다. 서울 출생. 공조판서와 홍문관·예문관대제학을 지낸 창희(昌熙)의 넷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직각(直閣)을 지낸 이명기(李命棋)의 딸이다.

1902년 대한의학교를 제1기로 졸업하고 육군부위로 임관되었으며, 1903년에 대한의학교의 교관이 되었다. 그 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할 때까지 군의무 계통에 종사하면서 정3품 통정대부 육군참령삼등 군의장으로 승진하였다.

경술국치 후 대종교를 신봉하여 1911년 지교(知敎)로 특별임명되어 배천지사(白川支司) 전사(典事)로 3년간 시무하였고, 1914년에는 상교(尙敎)가 되었다.

특히, 1917년 총본사가 동만주 화룡현 삼도구(東滿洲和龍縣三道溝)로 이전되자 맏형인 제2대 교주 교헌(敎獻 : 茂園宗師)을 따라서 만주로 건너가 선교에 힘쓰는 한편, 현지의 거류동포를 위한 의료사업에도 진력하였다. 1938년 정교(正敎)로 승진됨과 동시에 대형(大兄)의 호를 받았다.

1946년 1월서울에서 남도본사(南道本司)를 재건하여 전리(典理)가 되었고, 총본사가 만주로부터 환국하자 초대 전리가 되었으며, 도사교위리(都司敎委理 : 교주권한대행)가 되었다.

그 뒤 원로원장을 거쳐 1958년 사교(司敎)로 올라감과 동시에 도형(道兄)의 호를 받았다. 1962년 4월 교의회에서 제5대 총전교(總典敎 : 교주)로 공선되어 2년간 시무하였다.

참고문헌

  • - 『대종교중광육십년사(大倧敎重光六十年史)』(대종교종경종사편수위원회, 대종교총본사, 1971)

  • - 『한국의학사(韓國醫學史)』(김두종, 탐구당, 196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