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교단이나 선교회에 소속되어 해외나 낯선 지역에서 종교 교리를 전파하는 종교인.
개설
한국 선교의 시작
개신교 선교의 경우 독일인 선교사 귀츨라프(Karl Gützlaff)가 1832년 충청도 고대도에 머물며 주민과 접촉한 적이 있으나, 본격적인 시작은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이후였다. 공식적인 선교 개시는 감리교와 장로교에 의해 진행되었다. 감리교회에서는 일본에 주재하고 있던 선교사 매클레이(R.S. Maclay)가 1884년에 한국을 방문하여 고종으로부터 교육 · 의료 활동에 대한 윤허를 받았고, 스크랜턴(Wm. B. Scranton)과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등을 한국 선교사로 임명하였다. 장로교회에서는 1884년에 헤론(John W. Heron)과 언더우드(Hrace G, Underwood)를 한국 선교사로 임명하였다.
한국에 입국하여 활동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는 1883년 중국에 파송되었던 알렌(Horace N. Allen)이다. 그는 중국에 머물다가 미국공사관 담당 의사의 신분으로 1884년 서울에 들어왔다. 그다음 해인 1885년 4월에 북감리교 아펜젤러 부부와 북장로교 언더우드, 5월에 북감리교 스크랜턴과 그의 모친이 교단 파송 선교사로 입국하여 선교의 기초를 세웠다. 다른 교단들의 입국도 이어졌다. 1889년 코프(C.J. Corfe) 주교가 이끄는 성공회 선교단이 입국했고, 1889년 호주장로교회, 1892년 남장로교회, 1895년 남감리교회, 1898년 캐나다장로교회의 선교가 시작되었다. 1905년에 재림교회, 1908년에 구세군 선교사가 입국하여 선교가 시작되었다. 한편 1899년 니콜라이 알렉세예프(Nikolay Alekseyev)의 입국 이후 러시아정교회 선교도 시작되었다.
초기 선교 활동
여러 교파의 선교회가 동시에 활동하면서 생기는 비효율과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선교 지역 분할 협정이 맺어졌다. 1909년까지 장로교와 감리교 사이에 맺어진 협정에 따르면, 서울 · 평양 · 원산과 같은 대도시는 공동으로 점유하며, 서울 · 경기 · 충청 · 강원 등 중부 지역은 미감리회, 남감리회, 북장로교, 남장로교가 중복되지 않게 나누었다. 평안도 · 황해도는 북장로회와 남장로회, 함경도는 캐나다장로회, 경북은 북장로회, 경남은 호주장로회, 전라도는 남장로회가 각각 관할하였다. 분할 협정은 1936년에 폐기되었지만, 각 지역의 교회 특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끼쳤고, 훗날 교단 분열의 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초창기에 선교사들은 성경 번역과 같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교단의 차이를 넘어 협력하였다. 협력의 분위기는 1905년 한국복음주의선교회연합공의회 결성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정기간행물 『코리아 미션 필드(The Korea Mission Field)』, 『기독신보(基督申報)』와 『찬송가』를 공동 발행하였다. 병원과 학교의 공동 운영도 시도되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활동
1920년대부터는 교회 안팎으로 선교사들에 대한 불만이 나타났다. 사회적으로는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교회와 선교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았고, 교회 내부에서는 선교사로부터 자치권을 확보하려는 한국 교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재림교회 선교사가 한국 아이를 심하게 징벌한 허시모(許時謨) 사건으로 선교사가 사회적으로 크게 비판받았고, 구세군과 장로교에서는 선교사에게 교회 자치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1937년 이후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보수적인 선교사들은 이를 거부하고 학교를 폐쇄하였다. 1940년에 대부분의 선교사가 한국에서 철수하였고, 남은 선교사도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체포되어 강제 송환되었다.
선교사들은 해방 이후 선교 사업을 재개하였고, 특히 한국전쟁 이후 구호와 재건을 위해 노력했다. 선교사는 이전과는 달리 한국인과 동등한 교역자로서 협력하는 관계로 역할이 재정립되었다. 한편 1956년에 후기성도교회, 1958년에 루터교회가 한국에 진출하여 선교사 입국이 시작되었다.
현재 한국에서 일부 교단을 제외하고는 선교사의 수가 과거에 비해 축소되고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미국에 이어 많은 수의 해외 선교사를 파송하는 기독교 국가로 성장하였다. 해외에 파송된 한국 선교사의 수는 1990년대 이후 급증하여, 2022년 기준으로 169개국에 22,000명 이상에 이른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류대영, 『초기 미국 선교사 연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1)
-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대한기독교출판사, 1982)
- 백낙준, 『한국개신교사』 (연세대학교 출판부, 1973)
- 『한국기독교의 역사 I』 (한국기독교역사학회,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2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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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일정한 임무가 주어져 사람이 보내어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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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조선 고종 19년(1882)에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수호와 통상을 목적으로 맺은 조약. 우리나라가 구미(歐美) 제국과 맺은 최초의 조약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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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임금이 신하의 청을 허락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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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종교를 전하거나 가르치지 않고, 의료ㆍ교육ㆍ복지 따위의 분야를 이용하여 종교를 전파하는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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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 뒤에 일본의 강압에 의하여 우리나라와 일본이 맺은 조약. 전문 칠 조(七條)로 되어 있으며 모든 행정ㆍ사법 사무를 통감부의 감독 아래에 두는 것 따위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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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우리의 종교와 사상 자유를 억압하기 위하여 신사에 배례하도록 강요하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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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교회의 종교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 목사, 전도사 등이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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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행군의 맨 앞에서 경계ㆍ수색하는 임무를 맡은 병사. 또는 그런 부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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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국가가 종교적 중립성을 유지하여 정치권력과 종교를 결부하지 아니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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