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0 년(영조 36) 경기도 여주 출생으로, 권철신(權哲身)·권일신(權日身) 형제가 사는 한감개(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로 이사하여 권철신에게 학문을 배우는 가운데 권일신을 통해 입교했다. 세례명은 바오로[Paulus]이다. 이승훈(李承薰)·권일신 등이 가성직(假聖職) 제도를 만들어 교회 활동을 하다가 북경주교에게 교회법상의 유권해석을 구하기 위해 1789년 밀사를 보낼 때 이 일을 맡아 회답을 받아왔다.
이 때 북경에서 조건 영세와 성체성사 및 견진성사를 받았으며, 그가 가져온 회답에 따라 조선교회는 가성직 제도를 해체하고 성직자 영입운동을 펴나가게 되었다. 이에 따라 1790년 또 다시 성직자 파견을 요청하는 밀사로 북경에 들어가 파견약속을 받고 돌아왔다.
이 때 조상에 대한 제사가 천주교에서 금지되고 있다는 것을 신자들에게 알려줌으로써 신자들의 커다란 동요를 일으켰다. 1792년 세번째로 북경교회에 들어가 선교사파견을 재요청, 1794년 주문모(周文謨) 신부가 입국할 때에는 지황(池潢) 등과 함께 안내를 맡아 서울로 잠입시켰다.
1795년 주문모 신부를 체포하려다 놓친 ‘을묘실포사건’이 발생하면서, 집주인인 최인길(崔仁吉)을 비롯하여 입국에 도움을 준 윤유일과 지황도 체포되었다. 이들은 포도청에서 혹독한 형벌을 받다가, 체포된 다음날인 6월 28일에 순교했다. 세 사람은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거행된 시복식에서 복자품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