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진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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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운동단체.
이칭
이칭
진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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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04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운동단체.
개설

보부상단(褓負商團)을 모체로 하여 발족한 혁신적인 단체로, 상민회(商民會)의 후신인 진명회(進明會)를 개칭한 것이다. 회장에 이준(李儁), 총무 겸 재무에 나유석(羅裕錫), 평의장에 윤하영(尹夏榮), 서기에 양한묵(梁漢默) · 김진극(金眞極) 등으로 조직되었다.

연원 및 변천

1904년 11월 전 부상(負商)이던 윤효정(尹孝定) · 이원직(李元稷) · 나유석 등이 상계(商契) 내에서 친일적이며 보수적인 일부 계원을 배제하고 진명회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입회하는 사람이 얼마 안 되자, 회장 나유석 등이 의논하여 인망이 높은 이준을 회장으로 추대하고 공진회라고 개칭, 여론을 쇄신하여 같은 해 12월 12일 단체를 발기하였다.

이 때 유신회(維新會)진보회(進步會)가 합당하여 조직된 일진회(一進會)가 식민지화를 획책하자, 이준은 이들의 활동을 저지시키기 위해 민영환(閔泳煥)과 의논하여, 12월 17일 단체의 성격을 일반 정당으로 전환하고 3대 강령을 발표하였다.

즉, ① 황실의 위신은 전범(典範)에 정한 것에 의하여 존중할 것 ② 정부의 명령은 법률과 규칙이 정한 범위 내에서 복종할 것 ③ 인민의 권리는 법률 내에서 자유로이 신장할 것 등이다.

그리고 일진회의 세력 약화와 정면 대결을 위한 진용으로 구성하기 위해 유신회에서 활약하던 윤효정을 일진회에서 탈회하도록 권유하여 부총무로 영입하고, 이상재(李商在)를 총무로, 나유석을 평의장으로 추대하였다.

또한 12월 25일 연설회를 개최하여 신기선(申箕善) · 김가진(金嘉鎭) · 이용태(李容泰) · 이윤용(李允用) 등에게 공개장을 보내어 일진회에서 탈되할 것을 종용하였다.

이를 지켜보던 정부는 사태가 점점 심각하게 전개되자 이준 · 나유석 · 윤효정 등을 체포하였다. 이에 격분한 공진회 회원들은 대대적인 시위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경무사(警務使)를 위협하여 세 사람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 기마헌병대의 출동으로 집회는 강제 해산되었다.

다음날 26일 이준의 부인 이일정(李一貞) 등 여성 단체 임원들이 시위 운동에 가담한 가운데 종로에서 대연설회를 개최하고, 평리원으로 진출하며 국문으로 된 격문을 살포하였다.

사태의 진전을 주시하던 고종은 일진회 회장 윤길병(尹吉炳)을 체포하여 공정성을 띠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미 윤길병은 일본조계(日本租界) 안으로 피신한 상태였으므로 이뤄지지 못하였다. 그 때 일진회의 송병준(宋秉晙)은 일본헌병을 평리원 감옥으로 파견, 이준을 탈취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28일 정부는 공진회와 일진회의 사무실을 폐쇄하고, 양 회의 지방 회원이 대거 상경한다는 풍문이 파다해지자 이를 금지시키려고 경계령을 내렸다. 그 뒤 송병준 · 이용구(李容九) · 윤시병(尹始炳) 등의 끊임없는 모함으로 공진회가 불리하게 되었다.

또한, 회장 이준이 3년의 정배형(定配刑)을 선고 받고 황주의 철도(鐵島)로 떠나자, 공진회의 활동은 점차 약화되어 1905년 2월 12일 스스로 해산하고 말았다.

참고문헌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
『매천야록(大韓季年史)』
『속음청사(續陰晴史)』
『이준선생전(李儁先生傳)』(유자후, 동방문화사, 1974)
『한말사회단체사논고(韓末社會團體史論攷)』(조항래, 형설출판사, 1972)
『황성신문(皇城新聞)』
『제국신문(帝國新聞)』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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