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준(宋秉畯)이 러일전쟁 발발과 함께 국내로 들어와 독립협회의 회원이었던 윤시병(尹始炳)·유학주(兪鶴柱)·염중모(廉仲模) 등을 포섭하여 1904년 8월 18일 조직하였다.
러일전쟁의 전국이 일본 쪽으로 우세하게 전개되자 일본군 군사통역관으로 서울에 온 송병준은 일본군사령부의 세력을 배경으로 정치적 결사를 계획하였고, 그에 따라 독립협회와 관련되었던 지인(知人)들을 포섭, 서울 광교의 지전도가(紙廛都家)에서 임시회를 가지고 유신회라는 민간단체를 창립하였다.
임시회장으로는 윤시병이 선출되었다. 유신회의 창립·발기의 목적에는 황실의 존안, 인민의 보호, 외교상의 절충을 통한 중흥의 위업달성 등 구국의 의지가 표방되고 있다.
그러나 이 회를 창립하고 조직하는 과정과 그 배후에는 조선주차군사령부의 계략과 비호가 있었음은 물론, 주동자 송병준은 일본군을 배경으로 일제의 대한침략과정을 원활히 하는 데 전위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친일단체 활동을 통하여 노골적인 매국행위를 감행하였다.
그 해 8월 20일에 특별회를 개최하여 회명을 일진(一進)으로 개정하고 취지서를 공포하였다. 이후 이용구(李容求)의 진보회(進步會)와 합류되면서 반민족적인 망동(妄動)을 감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