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로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개항기
조선 후기에, 사간원대사간, 병조판서,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기중(期中)
  • 시호익헌(翼憲)
  • 정은(貞隱), 표운(豹雲)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임오군란
  • 본관진주(晉州)
  • 사망 연도1887년(고종 24)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09년(순조 9)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항래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5월 14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사간원대사간, 병조판서,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기중(期中), 호는 표운(豹雲) · 정은(貞隱). 현감 강이구(姜彛九)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37년 (헌종 3) 진사시를 거쳐 1848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850년(철종 1) 정자(正字)가 된 뒤 홍문관응교를 거쳐 1857년 사간원대사간이 되었다.

원래 북인계열로서 노론 중심의 세도정치 아래 중용되지 못하였으나, 흥선대원군이 집정한 후 남인계와 북인계를 많이 기용함에 따라 1866년에는 병인양요로 피폐해진 강화도에 위유사(慰諭使)로 나가게 되었다.

그뒤 대원군이 계속 중용하여 1871년 병조판서를 거쳐 이듬해 좌의정이 되었다. 1873년 대원군을 탄핵한 최익현(崔益鉉)의 처벌을 주장하였다가 고종이 친정하게 되면서 우의정 한계원(韓啓源)과 함께 파직당하였다.

1874년 재기용되어 판중추부사를 지내던 중 1878년 효휘전(孝徽殿)의 참례(參禮)에 불참한 죄로 평안남도 삼화(三和)에 잠시 유배되었다가 다시 복직되었다. 이듬해 일본의 인천항 개항요구에 반대하였으며 판중추부사로 치사하여 봉조하(奉朝賀)로서 기로소에 들어갔다.

1883년 대원군파로 몰려 임오군란 때 난도(亂徒)와 작당하였다는 탄핵을 받아 경상남도 안의로 유배, 이듬해 풀려나와 1887년 사면되었다. 시호는 익헌(翼憲)이다.

참고문헌

  • - 『철종실록(哲宗實錄)』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고종기사(高宗紀事)』

  • - 『금구록(金甌錄)』

  • - 『매천야록(梅泉野錄)』

주석

  • 주1

    : 진사급제 : 『숭정기원후4정유식 사마방목(崇禎紀元後四 丁酉式 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43])

  • 주2

    : 문과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 주3

    : 증시 : 『순종실록』 4권, 1910년 8월 20일. "서기 등 26명에게 시호를 주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