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10월 일본에 망명중이던 손병희(孫秉熙)가 민족주의 개화운동단체로서 이용구(李容九)에게 조직을 지령하였으나 조직 실무자인 이용구에 의하여 본래의 의도와는 정반대인 친일단체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용구가 이것을 조직한 것은 1904년 2월이다. 한편 송병준(宋秉畯)은 1904년 8월 서울 광교(廣橋)의 지전도가(紙廛都家)에서 윤시병(尹始炳)·유학주(兪鶴柱) 등과 회합하고 윤시병을 회장으로 하는 유신회(維新會)를 조직하였다.
이 회는 1904년 8월 회명을 일진회(一進會)로 개칭하였다. 송병준과 이용구가 야합한 뒤 이 ‘개칭(改稱) 일진회’는 이용구의 진보회와 합동하면서 1904년 12월 이용구를 회장으로 하는 ‘합동 일진회’로 재출발하였다. 손병희는 민족주의 중립회(中立會)를 발기시키면서 이용구를 동학에서 축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