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8년(태조 7)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교동(校洞)에 창건되었다.
당시에는 대성전과 명륜당이 있었으며, 1400년에 불타자 곧 재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다시 소실되어 1599년(선조 32) 현재의 달성공원 부근에 재건하였다. 1605년 교동으로 이건하여 명륜당을 중건하였으며, 1932년 향교를 중심으로 지방 유생들의 독립운동이 확산될 것을 두려워한 일제는 복잡한 대구 시가지를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1974년 명륜당과 삼문, 사무실이 중건되었으며, 1981년에 대구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재단법인 대구직할시 향교재단 설립을 인가받았다. 1990년에 동 · 서재와 낙육재가 복원되었고 1995년에 유림회관을 신축하였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5량가(樑架)로 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교동에 있을 때는 대성전이 앞에 있고 명륜당이 뒤에 있는 전묘후학 방식이었으나 현재는 왼쪽에 명륜당이 있고 오른쪽에 대성전이 있는 좌학우묘(左學右廟) 방식이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 명륜당 · 동재(東齋) · 서재(西齋) · 문묘 · 삼문 등이 있으며, 향교 내에는 대구성(大邱城)의 축성 및 유래를 기록한 축성비(築城碑)와 수성비(修城碑), 경상도관찰사 · 판관 · 군수 등을 지냈던 사람들의 불망비(不忘碑) · 송덕비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의 위패를, 동무 · 서무에는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정원 30인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대성전은 1982년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