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3·1운동의 기획과 실행에 가담한 민족대표 48인 중 한 사람으로, 학생 대표로서 서울 학생 제2차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갑성(李甲成)으로부터 독립선언문 1,500장을 받아 각 학교에 배부하고 학생간의 연락책임을 맡았다. 또한, 3월 4일 배재고등보통학교 기숙사에서 각 전문학교 학생 지도급 대표와 장채극(張採極)·전옥결(全玉玦)·강우열(康禹烈) 등 중등학교 대표들이 모여, 서울학생 제2차시위계획을 세우고 김원벽과 함께 제2차운동의 최고 선도자로 추대되었다.
3월 5일 아침 시위를 주도하다가 경찰에 잡혀 1년 6개월 동안 복역하였다. 3·1운동 때 48인 중의 한사람이다. 1945년 광복 후 월남하여 초대함경남도지사 및 함경남도민회장, 건국대학교 초대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6·25사변 때 납북되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학생운동』(민족운동총서편찬위원회, 민족운동총서 8, 횃불사, 1981)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 『함경남도지』(도지편찬위원회,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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