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덕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3·1운동의 기획과 실행에 가담한 민족대표 48인 중 한 사람으로, 학생 대표로서 서울 학생 제2차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이칭
춘곡(春谷)
덕재(德齋)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6년(고종 23)
사망 연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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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3·1운동의 기획과 실행에 가담한 민족대표 48인 중 한 사람으로, 학생 대표로서 서울 학생 제2차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개설

자는 춘곡(春谷), 호는 덕재(德齋)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3·1운동 당시에 보성법률상업학교(普成法律商業學校) 학생으로 김성득(金性得)·김형기(金炯機)·김문진(金文珍)·김원벽(金元壁) 등과 함께 각 학교 학생들의 시위참여에 대한 일체의 임무를 맡고, 주로 서북친목회를 중심으로 동지규합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갑성(李甲成)으로부터 독립선언문 1,500장을 받아 각 학교에 배부하고 학생간의 연락책임을 맡았다. 또한, 3월 4일 배재고등보통학교 기숙사에서 각 전문학교 학생 지도급 대표와 장채극(張採極)·전옥결(全玉玦)·강우열(康禹烈) 등 중등학교 대표들이 모여, 서울학생 제2차시위계획을 세우고 김원벽과 함께 제2차운동의 최고 선도자로 추대되었다.

3월 5일 아침 시위를 주도하다가 경찰에 잡혀 1년 6개월 동안 복역하였다. 3·1운동 때 48인 중의 한사람이다. 1945년 광복 후 월남하여 초대함경남도지사 및 함경남도민회장, 건국대학교 초대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6·25사변 때 납북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학생운동』(민족운동총서편찬위원회, 민족운동총서 8, 횃불사, 1981)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함경남도지』(도지편찬위원회,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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