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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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각 도의 관찰사가 거처하는 관청.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원창애 (한국학대학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05일
대구 경상감영 중 외삼문 정면 미디어 정보

대구 경상감영 중 외삼문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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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각 도의 관찰사가 거처하는 관청.

내용

경기의 경우 처음에 수원에 두었으나 1년 뒤 광주로 옮겼다가 한양의 돈의문(敦義門) 밖에 설치하였다. 7도는 충청도의 충주(1602년 공주로 옮김), 경상도의 상주(1601년 대구로 옮김), 전라도의 전주, 황해도의 해주, 강원도의 원주, 함경도의 함흥, 평안도의 평양에 소재하였다.

감영에서 소용되는 비용은 관둔전과 늠전(稟典)으로 충당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관둔전 20결, 늠전 80결(판관이 있을 경우에는 40결을 더 주되, 가족을 데리고 가지 않을 경우 20결을 지급), 공수전(公須田) 15결로 되어 있다.

소속 노비는 450인(전라 · 함경도는 600인)이며, 소속 공장(工匠)은 경기도 1인, 충청도 19인, 경상도 39인, 전라도 19인, 강원도 22인, 황해도 19인, 함경도 8인, 평안도 7인이다.

참고문헌

  • - 『경국대전(經國大典)』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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