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효우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병조정랑, 장령, 봉상시첨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희중(希仲)
인물/전통 인물
  • 본관청주(淸州)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병조정랑|장령|봉상시첨정
  • 출생 연도1531년(중종 2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원창애 (한국학대학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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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병조정랑, 장령, 봉상시첨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희중(希仲). 한숙(韓俶)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세침(韓世琛)이고, 아버지는 통례 한원(韓垣)이며, 어머니는 이성수(尼城守) 이존관(李存官)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55년(명종 10) 생원·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1558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62년 중종의 능을 옮길 당시 재궁시위집사로 임명되었고, 다음해 사서를 지냈다. 1564년에는 지평, 다음해 헌납, 1566년 병조정랑에 임명되었다.

그 뒤에도 지평·병조정랑·장령·봉상시첨정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명종실록』 편찬시에는 직강(直講)으로 춘추관에 관여하였다. 1573년(선조 6) 장령으로 임명되었을 때에는 대간의 체모를 생각하지 않고 출사를 청탁하였다는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582년 그가 사예로 있을 때 명나라의 황태자가 탄생하자 조서를 반포하기 위하여 사신이 왔다. 사신들이 성균관에서 문묘를 참배하고 존경각(尊經閣)에 들어가 『국조오례의』를 보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선조가 진노하여 『국조오례의』를 명나라의 사신에게 보게 하였던 사성 이하는 모두 옥에 가두게 하였는데, 그도 책색관(冊色官)으로 하옥되어 국문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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