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석부(有溝石斧)’라고도 한다. 목재를 가공하는데 주로 쓰였다. 청동기시대 중기인 서기전 7세기경에 나타나 철기시대인 서기전후까지 한반도 전역에서 사용되었다.
중국의 농경문화와 함께 전래되었으며, 그 원형은 중국 화남지방의 유단석부(有段石斧)에서 찾을 수 있다. 유단석부는 부신 한 쪽에 단을 만들어서 끈을 묶어 사용한 반면, 홈자귀는 단대신 홈에다 끈을 묶어 사용하였다. 이 홈은 우리나라에서 고안해 낸 것으로 서기전 3세기경 벼농사와 함께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서기전 7세기경 우리나라 중서부지방에서 나타난 홈자귀는 서기전 5세기를 전후해 형식의 변화를 일으킨다. 서남해안지방에서는 배를 만드는데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장대형(長大形)의 홈자귀도 나타나고 있다.
홈자귀의 용도에 대해서는 땅을 파는데 쓰는 굴지구(掘地具) 등의 다목적 도구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중국의 유단석부처럼 목공구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특징의 하나는 마제석기의 활용이다.
석검·석촉·석도뿐만 아니라 석부도 용도에 따라 크기와 무게가 다른 여러 종류가 사용되었다. 그 중 홈자귀는 우선 요즈음의 도끼처럼 좌우가 대칭으로 생긴 마제석부로 벌채, 절단한 나무를 사용해 여러 가지 기구와 시설물을 성형하는데 쓰였던 일종의 가공구(加工具)로 추정된다.
농경을 위주로 하는 정착생활은 자연히 취락규모의 증대를 가져왔고, 그 결과 각종 시설물의 건설이 늘어나 목제가공구가 발달하게 되었다.
따라서 요즈음의 도끼와 자귀가 세트(set)로 사용되듯이 청동기시대에도 석부와 자귀가 함께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홈자귀는 청동제도끼가 출현한 뒤에도 변동 없이 상용되었다. 그러나 서기전후에 중국제 철부가 들어옴으로써 다른 석기들과 같이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