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에 발굴되었으며 광복 후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발굴된 유적으로 유명하다.
초도는 함경북도 나진만(羅津灣)에서 약 25㎞ 떨어진 섬이다. 초도해안 구릉지대를 발굴한 결과, 각종 유물과 조개더미(貝塚)·주거지를 발견하였다.
패각층(貝殼層)에서는 석기·토기·골각기 등의 유물이 인골(人骨)·수골(獸骨)과 함께 주로 발견되었고, 주거지에서는 노지(爐址)와 진흙을 깔아 다진 주거지 바닥이 발견되었다. 청동기와 철제품도 발견되었다. 조개더미와 주거지의 선후관계는 확실치 않다. 패각이 주거지 안에 꽉 차있거나 패각 위에 주거지 바닥이 형성된 예도 있다.
주거지는 모두 네모난 수혈주거지로 돌을 둘러 만든 노지를 갖추고 있다. 노지와 진흙다짐과의 높이 차가 심해 시기가 다른 주거지가 서로 겹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출토유물은 토기·석기·골각기·인골·청동기·철기 등으로 다양하며 신석기시대의 즐문토기도 섞여 있다.
토기는 몇 가지로 구분된다. 모래가 섞인 진흙으로 얇게 빚은 흑갈색을 띤 토기가 가장 많다. 그 중에는 표면을 마연한 것과 붉은 점토막(slip)을 입힌 것도 있다.
그 밖에 고운 진흙만으로 두껍게 빚은 황갈색 토기와 고운 진흙으로 매우 얇게 빚어 표면에 붉은 점토막을 입힌 토기로 크게 구분된다. 기형(器形)은 대접·보시기[埦]·옹(甕)·호(壺)·고배(高杯)·뚜껑[蓋]·시루·잔 등 다양하다.
석기는 석촉(石鏃)·석창(石槍)·석부(石斧)·석섬(石銛 : 작살)·정자형 석부(丁字形石斧 : 도끼의 일종)·석도(石刀)·석추(石錐 : 송곳)·석착(石鑿 : 끌)·환상석부(環狀石斧)·방추차·어망추·지석 등의 마제석기와 타제어망추·수정석(水晶石)과 흑요석(黑曜石)제 타제석촉·소형 석기 등 매우 다양하다.
금속유물로는 목걸이용의 관형 장신구(管形裝身具)·반지·단추·방울 등의 청동기와 녹이 심해 형태를 알 수 없는 철기가 있다.
인골은 남녀 성인과 어린아이를 합해 14명분이고 모두 패각층 속에서 발견되었다. 그 중 늙은 여자와 젊은 남자로 판명된 2구(軀)의 인골은 무릎을 굽혀 옆으로 눕혔다.
인골 주위에서 골각기와 석기들이 발견되었으나 어린아이로 확인된 인골의 가슴 위에서 청동관옥(靑銅管玉)과 청동부스러기가 발견된 예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부장품을 확인할 수 없었다. 또한 특별한 매장시설도 확인할 수 없는 점으로 보아 패각을 이용해 만든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
사슴·노루·개·돼지·토끼 등의 짐승뼈와 새뼈 뿐만 아니라 완전한 형태의 물고기뼈도 발견되었다. 패각은 백합(白蛤)·우럭·큰가리비·비단가리비·바지락·굴·조개·홍합 등의 조개류와 소라과·고둥과에 속하는 각종 권패류(卷貝類)가 있다.
초도 유적은 유물포함층이 모래층이기 때문에 포함층 유물과 패각층·주거지간의 선후관계를 따지기 어려워 정확한 연대를 추정하기가 힘들다. 철기시대 유물은 유물 자체만으로도 시기가 다른 것을 알 수 있으나 청동유물은 소속이 애매하다.
북한학자는 철기 및 그 관련토기를 제외한 청동기와 토기·석기·골각기 및 주거지와 조개더미을 하나의 시대로 묶어 청동기시대 전기의 유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신석기시대부터 사용된 타제석기와 골각기가 많이 출토된 점과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의 전통이 남아 있는 점으로 미뤄볼 때, 이 유적의 일부는 신석기시대 말기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초도의 조개더미는 함경도와 연해주(沿海州) 일대에 이룩된 조개더미문화(shellmound culture)에 속한다. 연해주지방의 조개더미문화는 우리 나라의 즐문토기시대인 서기전 3000년경에 중국의 신석기시대인 용산문화(龍山文化)의 농경과 청동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특징적인 유물은 반월형 석도·적색마연토기·채문토기가 있다.
유물과 문화로 미뤄볼 때, 초도 유적은 신석기시대 말기에서 청동기시대 초기에 해당되며 이후에 철기시대의 유물이 혼입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