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연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경재(敬齋), 신희(新稀)
  • 시호문효(文孝)
  • 연량(淵亮)
인물/전통 인물
  • 본관진주(晉州)
  • 사망 연도1453년(단종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영의정
  • 출생 연도1376년(우왕 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성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사)
  • 최종수정 2022년 10월 31일
영의정 하연 영정 미디어 정보

영의정 하연 영정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 · 신희(新稀). 하즙(河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헌 하윤원(河允源)이고, 아버지는 부윤 하자종(河自宗)이며, 어머니는 정우(鄭寓)의 딸이다.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396년(태조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봉상시녹사를 거쳐, 직예문춘추관수찬관(直藝文春秋館修撰官)이 되고, 이어 집의 · 동부대언 등을 역임하였다. 이 때 태종은 그가 간관(諫官)으로서 의연한 자세로 일을 말하는 것을 보고 손을 잡고 치하했다 한다.

세종이 즉위하자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조심스럽게 처사하여 신임을 받아 예조참판 · 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423년(세종 5)에는 대사헌으로서 조계종(曹溪宗) 등 불교 7종파를 선(禪) · 교(敎) 양종(兩宗), 36본산으로 통합하고, 혁파된 사원의 토지와 노비는 국가로 환수하고자 하여 채택받았다.

1425년에 경상도관찰사가 되었고 예조참판을 거쳐,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가 한때 천안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유배에서 풀려 형조 · 병조의 참판을 거쳐 1431년에 대제학이 되고, 그 뒤 대사헌 · 형조판서 · 좌참찬 등 고위관직을 역임하였다.

1437년 의정부에 들어가서는 판이조사로서 이조의 일을 맡아 공세법(貢稅法: 연분9등, 전분6등)을 마련했으며, 1442년에는 각품의 행수법(行守法)을 제정하였다. 1445년에 좌찬성이 되어 70세로서 궤장(几杖)을 받았다. 이어 우의정 · 좌의정을 거쳐, 1449년에 영의정이 되었다.

영의정으로 있던 1451년(문종 1)에 문종대자암(大慈庵)을 중수하려고 하자, 이에 반대하고 치사(致仕)하였다. 의정부에 들어간 지 20여 년 간 문안에 사알(私謁)을 들이지 않았고 법을 잘 지켜 승평수문(昇平守文)의 재상으로 일컬어졌다.

1454년에 문종의 묘정에 배향되고, 숙종 때 진주의 종천서원(宗川書院), 합천의 신천서원(新川書院)에 제향되었다. 편서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 『진양연고(晉陽聯藁)』가 있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참고문헌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문종실록(文宗實錄)』

  • - 『단종실록(端宗實錄)』

  •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

  • - 『사숙재집(私淑齋集)』

  • - 『경재집(敬齋集)』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주석

  • 주1

    : 조선 시대에, 사간원과 사헌부에 속하여 임금의 잘못을 간(諫)하고 백관(百官)의 비행을 규탄하던 벼슬아치. 우리말샘

  • 주2

    : 궤장연(几杖宴) 때에 임금이 나라에 공이 많은 70세 이상의 늙은 대신에게 하사하던 궤(几)와 지팡이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 주3

    :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 우리말샘

  • 주4

    : 윗사람을 사사로이 뵘.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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