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영이정청등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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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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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이정청에서 1703년에서 1705년 사이의 양역변통에 관하여 수록한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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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이정청에서 1703년에서 1705년 사이의 양역변통에 관하여 수록한 등록.
서지적 사항

1책 88장. 필사본.

내용

내용은 조선변통절목(漕船變通節目)·오군문개군제변통절목(五軍門改軍制變通節目) 등 여섯 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째, 조선변통절목은 공진창(貢津倉)·성당창(聖堂倉)·군산창(群山倉)·법성창(法聖倉)의 조선 71척의 조군(漕軍) 명수를 정한다는 등의 25개 조목으로 되어 있다.

둘째, 오군문개군제변통절목은 민진후(閔鎭厚)가 주축이 되어 개정한 것으로서, 각 군문마다 구군제(舊軍制)·변통절목·개군제가 기록되어 있다.

주된 내용은 어영청과 금위영의 제도를 101영(營) 5부(部) 25사(司)의 제도로 동일하게 편제해 훈련도감과 함께 양익체제(兩翼體制), 즉 삼군문체제(三軍門體制)를 완성하고, 총융청(摠戎廳)과 수어청은 3영제로 통일시키는 것이었다. 또, 어영청과 금위영의 입번제도(入番制度)를 통일시켜 2년에 한 번씩 번상하게 하였다.

셋째, 양남수군변통절목(兩南水軍變通節目)은 이유(李濡)가 주관하고 유집일(兪集一)이 강정(講定)한 것이다. 그 내용은 각 선(船)의 노군(櫓軍) 등의 배정 인원을 조정하고, 산군(山郡)에 흩어져 있던 원군(元軍)으로부터 신포(身布)를 거두어 진(鎭) 아래의 민으로 고립(雇立)시키며, 수군 신포 3필을 2필로 감한다는 등의 것이다.

넷째, 군포균역절목(軍布均役節目)은 신포를 2필로 통일시키고, 승수(升數)와 척수(尺數)도 통일시켜 6승목(升木) 40척으로 하며, 2필 가운데 1필을 본색(本色)으로, 1필은 절전수봉(折錢收捧)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다섯째, 해서수군변통절목(海西水軍變通節目)은 방어사영(防禦使營)과 5진의 수군 4,571인을 양의급대(量宜給代)하고, 나머지 군사 1,883인은 면포 2필을 거두어 경비에 충당하도록 하였다. 또, 각 진 아래의 주민을 포수와 노군의 역에 충당하며 전선의 노군 등 인원 배정을 조정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여섯째, 교생낙강징포절목(校生落講徵布節目)은 14개 조목으로 이유가 제정한 것이다. 고강(考講)에서 통과하지 못한 자는 군역에 충정하지 않고, 교안(校案)에 그대로 두고 포를 징속하게 하였다.

또, 낙강교생(落講校生)의 속포(贖布) 2필은 감영에서 맡아 처리하고, 북도(北道)와 서관(西關)의 강변칠읍(江邊七邑) 교생은 연 3차 떨어진 이후에 군역에 강등해 종사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정청 설치 이후의 양역변통책에 의해 시행된 절목은 모두 1705년에 제시된 것들이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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