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영록대부(榮祿大夫)에 해당한다. 1392년(태조 1) 7월 새로이 관제를 제정할 때 설치되었다.
1522년(중종 17) 가정대부에서 가의대부(嘉義大夫)로 개칭되었는데, 이는 당시 명나라 세종이 새로 즉위하여 연호를 ‘가정(嘉靖)’으로 정하였기 때문에 이를 피해 고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가정(嘉正)’으로 고쳤다가, 음이 같다 하여 다시 ‘가의’로 개정하였던 것이다.
이에 해당되는 관직은 돈녕부(敦寧府)·의금부·경연(經筵)·춘추관(春秋館)·성균관 등의 동지사(同知事), 6조의 참판, 한성부의 좌윤·우윤, 대사헌, 개성·광주·강화·수원 유수(留守), 홍문관·예문관(藝文館)·규장각의 제학(提學),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좌·우부빈객(左右副賓客),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 좌·우유선(左右諭善), 8도관찰사, 부윤(府尹) 등이었다. 1894년(고종 31) 7월 갑오경장 때 관질(官秩)을 11등급으로 개정하면서 혁파되었다. → 가의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