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은 1인이다. 좌상(左相) · 좌정승(左政丞) · 좌규(左揆) · 좌합(左閤) · 좌대(左臺) 등으로도 불린다.
좌의정은 1400년(정종 2) 4월 고려 충렬왕 이래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가 의정부로 개편되면서 설치되었다. 처음에는 도평의사사적인 성격이 계속되어 문하좌정승(門下左政丞)이 그대로 계승되었다.
1401년(태종 1) 7월 비로소 문하부를 혁파하고 의정부적인 것으로 개칭하면서 의정부좌정승으로 고쳤다. 1414년 4월에 의정부서사를 나누어 육조에 귀속시켜 의정부 기능이 축소됨에 따라 의정부우정승과 함께 정원 2인의 판부사(判府事)로 개칭되었다. 그 해 6월에 판부사가 좌의정 · 우의정으로 분리, 개칭되면서 확립되었고, 이후 『경국대전』으로 명문화되었다.
좌의정은 대개 우의정을 역임한 원로대신으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영의정 · 우의정과 함께 삼공(三公)으로서 국왕을 보좌하면서 백관을 통솔하고 서정을 감독하는 역할을 하였다.
1436년(세종 18)까지는 상위에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가 있기는 하였지만 판이조사(判吏曹事)를 겸하면서 문반의 인사를 관장하고, 또 영의정부사가 의정부서사(議政府署事)에 불참함으로써 영의정부사를 대신하여 실질적인 수상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법제적으로는 영의정 · 우의정과 함께 최고의 국정책임자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기능은 ① 왕권, ② 의정부와 육조의 역학관계, ③ 원상(院相) · 비변사 · 규장각의 운영, ④ 영의정 · 우의정 · 육조의 판서 · 승정원승지의 자질, ⑤ 당쟁 · 세도정치의 진행, ⑥ 각종 변란으로 인한 정치분위기 등과 연관되면서 강약(强弱)이 반복되었다.
또한, 본직 이외에 문소전(文昭殿) · 인수부(仁壽府) · 사재감(司宰監) · 승문원(承文院) 및 비변사의 도제조(都提調)와 영경연사(領經筵事) ·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를 당연직으로 겸임하였다. 그리고 홍문관 · 예문관의 영사와 세자시강원부(世子侍講院傅), 도화원(圖畫院)의 도제조, 일시적 · 집중적인 사업을 위한 각종 도감(都監) · 소(所) · 색(色) · 청(廳) 등의 도제조와 명사(明使) · 청사(淸使)의 영접사 및 도체찰사(都體察使) 등을 수시로 겸임하였다.
좌의정은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으로 인한 관제개편과 함께 영의정 · 우의정과 합해 총리대신(總理大臣)이 되면서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