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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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최고정부기관인 중앙 관청.
제도/관청
  • 설치 시기1369년(공민왕 18)
  • 폐지 시기1401년(태종 1) 7월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성준 (수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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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 최고정부기관인 중앙 관청.

내용

중서문하성의 후신이다. 1275년(충렬왕 1)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이 합쳐져 첨의부(僉議府)로 일원화되었다가, 그 뒤 1293년(충렬왕 19)에 도첨의사사(都僉議使司)가 되고, 1356년(공민왕 5) 때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으로 환원되었다가, 1362년(공민왕 11)에 도첨의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 후 1369년(공민왕 18) 문하부가 되었다.

이 때 관원으로는 영문하(領門下), 문하좌 · 우시중(門下左右侍中),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참지문하부사(參知門下府事),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 좌 · 우산기상시(左右散騎常侍), 좌 · 우간의대부(左右諫議大夫), 문하사인(門下舍人), 좌 · 우사간(左右司諫), 문하녹사(門下錄事), 문하주서(門下注書) 등이 있었다.

문하부는 조선시대 그대로 계승되어 한동안 존속하다가 1401년(태종 1) 7월 의정부와 그 기능이 중복된다고 하여 혁파되었다.

이 때 문하부를 혁파하게 된 것은 문하부가 백규(百揆)의 서무를 총괄하는 최고아문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의정부에 그 실권을 빼앗기고 명목상의 존재로 떨어진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하부가 최고아문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다하지 못한 것은 고려말 이미 의정부의 전신인 도평의사사에 그 실권이 넘어가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고려사 선거지 3-역주(1)-」(김성준,『호서사학』5, 1977)

  • - 「고려도당고」(변태섭,『역사교육』11·12,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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