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5년(충렬왕 1) 어사대를 감찰사로 고쳤다. 그 담당기능은 시정(時政)을 논집하고 풍속을 교정하고 백관을 규찰, 탄핵하는 임무가 주였고, 한편으로는 서경(署經)과 같은 중요한 정치적 기능도 함께 담당하였다.
이 때 관직은 어사대의 대부(大夫)를 제헌(提憲)으로, 중승(中丞)을 시승(侍丞)으로, 시어사(侍御史)를 시사(侍史)로, 감찰어사(監察御史)를 감찰사(監察史)로 고쳤다.
감찰사의 관원인 대관(臺官)은 낭사(郎舍)의 관원인 간관(諫官)과 더불어 대간(臺諫)을 구성하여 청요직(淸要職)으로서 중요시되었다.
감찰사는 그 뒤 1298년(충렬왕 24)에 충선왕이 선위(禪位)를 받아 사헌부(司憲府)로 고쳤지만, 곧 충렬왕이 복위하여 감찰사로 환원하였다. 1308년에 충선왕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되자 또 사헌부로 고쳤다.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어사대로, 1362년에 또 감찰사로, 1369년(공민왕 18)에 다시 사헌부로 개변을 되풀이하였지만, 조선시대에는 사헌부로 일관하였다. →사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