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관은 천문·역수(曆數)·측후·각루(刻漏)의 일을 맡아보았는데, 국초에는 태복감(太卜監)과 태사국(太史局)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며, 태복감은 천문·역수를, 태사국은 측후·각루를 관장하였다.
이 때 감후는 태사국의 최말단에 있으면서 기후에 관한 일을 맡아보았으며, 문종 때의 관제에서는 종9품으로 2인이 있었다. 그 뒤 1308년(충렬왕 34)에 충선왕이 관제를 개혁할 때 사천감(국초 태복감의 후신)을 태사국에 병합하여 서운관을 두었는데, 감후는 정9품으로 품질이 오르고 정원도 3인으로 늘었다.
그 뒤 1356년(공민왕 5)·1362년·1369년·1372년에 문종구제로, 혹은 충렬구제로 돌아가면서 개편이 되풀이되었다. 1392년(태조 1) 신왕조의 관제를 정할 때 서운관에 감후 4원을 두었다가 1420년(세종 2)에 2인으로 줄였다. 1466년(세조 12)의 관제개혁 때 서운관을 관상감(觀象監)으로 고치면서 부봉사(副奉事)로 바뀌어졌다. →서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