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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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고려 · 조선시대 어량(魚梁) · 산택(山澤)에 관한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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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 조선시대 어량(魚梁) · 산택(山澤)에 관한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내용

고려 문종 때 사재시(司宰寺)로 관제를 정해 판사(判事, 정3품)·경(卿, 종3품) 1인, 소경(少卿, 종4품) 1인, 승(丞, 종6품) 2인, 주부(注簿, 종7품) 2인을 두었다. 1298년(충렬왕 24)에 사진감(司津監)으로 고쳐 판사를 없애고 경을 감(監)으로, 소경을 소감(少監)으로 고쳤다가 다시 사재시로 개칭하였다.

1308년(충렬왕 34) 다시 도진사(都津司)로 개정해 영(令, 정3품) 3인, 장(長, 정4품) 3인, 승(정5품) 2인, 주부(정7품) 2인을 두었다. 뒤에 사재시로 고쳐 판사(정3품)·영(종3품)·부령(종4품)·승(종6품)·주부(종7품)를 두었다. 1356년(공민왕 5)에 사재감으로, 1362년에 사재시로, 1369년에 사재감으로, 1372년에 사재시로 이름이 여러 번 바뀌었다. 직제도 1356년에 영을 경으로, 부령을 소경이라 고치고, 1362년에 다시 경을 영으로, 소경을 부령이라 고쳤다.

조선 건국 뒤 1392년(태조 즉위년) 7월에 고려의 제도를 본받아 사재감을 설치, 어량·산택에 관한 일을 맡게 하였다. 직제로 판사(判事, 정3품) 2인, 감(監, 종3품) 2인, 소감(少監, 종4품) 2인, 주부(主簿, 종6품) 2인, 겸주부(兼主簿, 종6품) 1인, 직장(直長, 종7품) 2인을 두었다.

1414년(태종 14) 1월 감을 정(正)으로, 소감을 부정(副正)으로 개칭하고, 이듬해 1월에는 부정 1인을 감원하였다. 1419년 12월에 다시 1인을 늘이고, 1423년(세종 1) 주부 1인을 감원하였다. 1460년(세조 6) 다시 부정 1인, 직장 1인을 감원하고, 1466년에 참봉(參奉, 종9품) 1인을 감원해 이것이 『경국대전』에 성문화되었다.

『경국대전』에는 어물(魚物)·육류(肉類)·식염(食塩)·소목(燒木)·거화(炬火) 등을 맡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조(提調, 종2품) 1인, 정(정3품) 1인, 부정(종3품) 1인, 첨정(僉正, 종4품) 1인, 주부(종6품) 1인, 직장(종7품) 1인, 참봉(종9품) 1인 등을 두었다. 뒤에『속대전』에서는 정·부정·참봉을 감원하고 봉사(奉事) 1인을 증원했다가 1882년(고종 19)에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태조실록(太祖實錄)』
『태종실록(太宗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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