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우군동지총제, 제주안무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곧 제주도로 귀환하였고, 태조 때는 빈번히 군마를 바치는 등 성의를 다하였다. 1402년(태종 2) 탐라성주 재직시에 신라 이래로 제주를 지배한 고씨(高氏)와 양씨(梁氏)가 세습한 성주(星主)와 왕자(王子)의 명칭이 분수에 맞지 않는다고 개정하여 줄 것을 청하여, 성주는 좌도지관(左都知管), 왕자는 우도지관(右都知管)으로 개칭되었다.
1407년 5월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 1410년경에는 제주안무사가 되었다. 1411년 8월 아들 고상온(高尙溫)에게 세직(世職)인 제주도주관좌도지관(濟州都州官左都知管)을 승습시켜줄 것을 청하여 승계시키고 한성에서 죽었다.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제주를 안무함에 큰 공이 있었고, 태종의 지극한 은총을 받았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태조실록(太祖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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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제주마 진상 : 태조실록6권, 1394년(태조 3) 7월 7일. "제주 사람 고봉례 등이 말 백 필을 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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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제주도 관명 개칭 : 세종실록 151권, 지리지 전라도 제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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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제주 안무사 역임 : 태종실록19권, 1410년(태종 10) 5월 4일. "제주 안무사 고봉례 등이 말 1백 필을 바치자 종친 등에게 나누어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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