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부터는 사도세자의 병증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1762년 29세에 사도세자의 죽음을 맞있으나 혜빈(惠嬪)로 추서되면서 세자빈의 위치를 그대로는 유지하였다. 이후 아들 정조를 할아버지 영조에게 보내 함께 기거하면서 왕세손 수업을 받게 하였다. 정조가 후계자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영조는 정조를 자신에게 보낸 것이 사도세자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효를 다한 것이라고 하며 갸륵하다는 뜻에서 ‘가효당(嘉孝堂)’이라는 당호를 내렸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궁호가 혜경(惠慶)으로 올라 혜경궁으로 불리게 되었다. 순조(純祖) 즉위 초부터 정조의 유지임을 강조하면서 아버지 홍봉한과 친정 집안의 신원(伸冤)을 요청하였고, 순조 14년(1814) 신원과 복권을 받았다. 1815년 창경궁에서 81세로 사망하였으며, 경기도 화성의 융릉(隆陵)에 남편인 장헌세자〔사도세자〕와 함께 합장되었다.
1795년 환갑에 사도세자의 죽음과 자신의 한 많은 일생을 서술한 『한중록(恨中錄)』을 펴냈다.
고종의 5대조 추존에서 장종과 함께 헌경왕후(獻敬王后)가 되었고, 대한제국 때는 헌경의황후(獻敬懿皇后)로 다시 격상 추존되었다. 시호는 효강자희정선휘목유정인철계성헌경왕후(孝康慈禧貞宣徽穆裕靖仁哲啓聖獻敬王后)이며, 능은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융릉(隆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