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록 ()

고전산문
문헌
조선 후기,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가 지은 회고록.
이칭
이칭
한중만록(閒中謾錄), 한중록(恨中錄), 한듕녹, 읍혈록(泣血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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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한중록(閑中錄)」은 조선 후기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가 지은 회고록이다. 한글본, 한문본, 한글·한문 혼용본 등의 필사본(筆寫本)이 전해지고, 이본이 현재 20여 종으로 확인되고 있다. 「한중록」은 내용상 세 차례에 걸쳐 서술된 혜경궁 홍씨의 글 모음인데, 저자의 일생을 회고한 내용, 사도세자(思悼世子)가 뒤주에 갇혀 죽게 된 경위를 기술한 내용, 친정에 쏟아진 여러 가지 죄의 혐의에 대해 변명하는 내용이다.

정의
조선 후기,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가 지은 회고록.
구성 및 형식

「한중록」은 한글본, 한문본, 한글·한문 혼용본 등의 필사본(筆寫本)이 전해진다. 「한중록」의 이본은 현재 20여 종으로 확인되고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고려대학교 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등 국내에 많은 소장본이 있다. 해외 소장본 가운데 중요한 자료로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의 「읍혈록(泣血錄)」과 「보장(寶藏)」을 꼽을 수 있는데, 이것들은 「한중록」의 일부가 따로 전하는 경우이다.

「한중록」은 총 3부로 구성된 6권 6책이고, 이 3부는 전혀 다른 저작 동기와 성격을 지닌 글이다. 다만 「한중록」은 출간된 정본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이본에 따라서 제1부만 따로 묶인 것이 있고, 제3부만 따로 묶인 것도 있으며, 제3부만 묶인 것도 부록까지는 함께 묶이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제1부에서 제3부까지를 모두 묶은 이른바 종합편에도 부록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제2부의 경우에는 종합편 속에서만 존재하며 따로 독립적으로 묶여서 전해지는 것은 없다.

내용

「한중록」은 세 차례에 걸쳐 서술된 혜경궁 홍씨의 글 모음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저술 시기는 1795년(정조 19)으로 저자의 일생을 회고한 내용이다. 조카 홍수영의 부탁이 저작 동기이다. 두 번째는 1802년(순조 2) 봄 초고를 작성하고, 1805년 4월에 완성하였다. 사도세자(思悼世子)가 뒤주에 갇혀 죽게 된 경위를 시간순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순조의 생모인 가순궁(嘉順宮)이 자손들도 알 수 있도록 써 달라고 한 것이 저작 동기이다. 세 번째는 다시 2차례로 구분된다. 1802년 7월에 본편을 저술했는데, 그 내용은 친정에 쏟아진 여러 가지 죄의 혐의에 대한 변명이다. 이는 친정에 죄가 없음을 항변하기 위해서 지은 것이다. 또 1806년에 부록을 저술하였는데 전편에서 못다 한 말을 보충하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1권은 제1부의 전편이다. 제1부는 혜경궁 홍씨가 글을 쓴 내력을 밝히는 것에서 시작된다. 장조카 홍수영의 부탁으로 환갑을 기념하여 자기 친정에 남긴 글이다. 내용은 자신의 일생을 비교적 담담한 심정으로 회고한 것이며 아울러 후손들에게 충고한 말도 있다. 서울 서대문 밖 거평동 외가에서 태어난 일, 한글을 가르쳐 준 작은어머니, 어려운 살림이지만 단란했던 가족, 어린 나이에도 어른스럽게 행동한 일, 정을 나눈 주위 친척들의 일이 먼저 기술되었고, 이어서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간택의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어 궁중에 들어와서 엄격한 궁중 생활에 적응해 나간 과정을 적고 있으며, 정조가 태어나고 세손빈을 맞이하고 이어서 남편이 죽게 되는 과정을 차분히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남편이 죽고 나서 아들 정조와 궁궐을 나누어 헤어져 살면서 영조로부터 가효당(佳孝堂)이라는 현판까지 받은 일까지 적고 있다.

2권과 3권에서는 사도세자 죽음의 경과를 집중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총명했던 사도세자의 어린 시절 일화, 동궁의 내인들 때문에 사도세자와 멀어진 영조, 아버지와 성격이 다른 데다가 아버지가 너무도 엄격하여 아버지를 무서워하기 시작한 사도세자, 15세에 대리청정을 하면서 막중해진 부담과 거듭된 부왕의 꾸짖음에 병이 깊어지기 시작한 사도세자, 옷을 잘 입지 못하는 의대증에 걸리고 주위 하인들을 죽이기 시작한 사도세자, 평양까지 몰래 다녀오는 등 부왕의 눈 밖에 벗어난 사도세자, 마침내 영조가 대처분을 결심하고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일 등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기술하고 있다.

4권에서는 다시 제1부의 후반을 이어 붙이고 있다. 1764년의 이른바 갑신 처분, 즉 정조를 사도세자가 아니라 효장세자(孝章世子)의 아들로 두게 한 뼈아픈 일을 적고 있고, 그다음 화완옹주(和緩翁主)가 주1 정조와 외가가 멀어지고, 또 정순왕후(貞純王后) 측에서 자기 친정을 공격한 일 등을 시간순으로 기술하고 있다. 정조 즉위 후에는 집안의 어려움이 극에 달했는데, 제1부를 쓴 1795년(정조 19) 무렵에는 정조가 비로소 예전의 과오를 깨닫고 외가를 잘 대해 주기 시작해서, 환갑 때는 어머니 혜경궁을 모시고 화성의 사도세자 무덤으로 갔고 외가 친지들을 불러 성대한 잔치를 열어 주었다는 것으로 서술을 끝맺고 있다.

5권과 6권은 모두 제3부의 내용으로 사실은 제3부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순서를 뒤바꾼 것이다. 5권은 친정에 겨누어진 여러 혐의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밝힌 것이다. 화완옹주가 정조와 외가를 이간시킨 일에서 시작하여, 홍국영이 또한 친정을 더욱 공격한 일, 홍낙임이 천주교 신자라고 하여 사약을 받은 일, 홍봉한에게 가해진 여러 혐의에 대한 변호를 담고 있다. 6권은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며 친정이 공격당하고 결국 동생 홍낙임이 사사된 아픈 상황을 말하면서, 정조의 입을 빌려 친정의 억울함을 변호하겠다는 데서 시작된다. 정조가 말년에 외가를 변호하며 그 억울함을 모두 풀어 주겠다고 말했다고 하면서, 정조의 말을 근거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을 때 홍봉한이 뒤주의 아이디어를 말했다는 혐의를 벗긴다. 이어서 정조가 홍봉한의 문집을 편집하기 위해 애쓴 사실을 적어서 정조가 결코 외가에 혐의를 두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그다음에는 정순왕후의 친정이 어떻게 정조의 등극을 방해했는지를 말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한중록」은 역사적 인물의 글이면서, 더욱이 그 인물이 비빈(妃嬪)이라는 사실에서, 정치적 야화(野話)로서 역사의 보조 자료가 된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사망한 사건인 임오화변(壬午禍變)의 이유 및 홍봉한 일가에 대한 사실 관계를 재검토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실기 문학이다. 또한 이 작품은 여류 문학, 특히 궁중 문학이라는 점에서 궁중 용어·궁중 풍속 등의 보고라 할 수 있다. 한편, 「한중록」은 소설로 볼 수 있을 만큼 문장이 사실적이고 박진감이 있다. 그리고 문체는 옛 귀인(貴人)들의 주2 품위를 풍기고 경어체의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동욱, 이병기, 『한듕록』(민중서관, 1961)
김용숙, 『조선조여류문학의 연구』(숙명여자대학교출판부, 1978)
김용숙, 『비장 한듕록』(숙명여자대학교출판부, 1981)
김용숙, 『한중록연구』(한국연구원, 1983)
이금희, 『한중록』(국학자료원, 2001)
정병설, 『원본한중록』(문학동네, 2010)
정병설, 『한중록』(문학동네, 2010)

논문

정병설, 「「한중만록(閒中謾錄)」 해제(解題)」(고려대학교 해외한국학자료센터)

인터넷 자료

한국학자료포털(http://ksstma.aks.ac.kr)
주석
주1

두 사람이나 나라 따위의 사이를 헐뜯어 서로 멀어지게 하다. 우리말샘

주2

법도에 맞고 아담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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