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필사본. ‘규중칠우쟁공기(閨中七友爭功記)’라고도 한다. 2, 3종의 이본이 있으나, 서울대학교 가람문고에 소장된 『망로각수기(忘老却愁記)』에 실려 있는 작품이 가장 상세하고 정확하다. 작자는 여자이고 「조침문」을 지은이와 동일인이라고 추정하기도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이 작품에 대해 의인화된 등장인물들이 다투는 모습을 당쟁과 연결지어 영 · 정조시대를 창작연대로 잡을 수 있다는 견해는 지나친 비약이다. 사용된 어휘나 표기법으로 미루어보아 철종조 이후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적절한 듯하다.
이 작품이 수필인가 소설인가도 논란거리인데, 수필과는 달리 인물간의 갈등과 사건구성이 있다는 점에서 일단은 소설적 요건을 갖추었다고 하겠다. 특정 사물을 의인화하여 사람의 일에다 견줄 수 있도록 한 설정은 가전의 전통을 따랐다고 할 수 있어, 가전체 작품으로 규정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된다.
옛날 주부인이 바느질을 하다가 낮잠이 들었다. 그 사이에 규중칠우, 즉 바느질에 쓰이는 도구인 척부인(尺夫人 : 자) · 교두각시(交頭 : 가위) · 세요각시(細腰 : 바늘) · 청홍각시(실) · 감투할미( 골무) · 인화낭자(引火 : 인두) · 울낭자(熨 : 다리미) 등이 각기 자기가 없으면 어떻게 옷을 짓겠느냐면서 서로의 공을 다툰다.
떠드는 소리에 놀라 깨어난 주부인이 너희들이 공이 있다 한들 자기 공만 하겠느냐고 책망하고는 다시 잠든다. 그러자 서로 다투던 규중칠우는 부녀자들이 자신들에게 가하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 불평을 토로한다. 마침내 잠에서 깨어난 주부인이 화를 내면서 모두 쫓아내려 하였으나, 감투할미가 용서를 빌어 무사하게 되었다. 그 공로로 감투할미는 주인의 각별한 사랑을 받게 되었다.
이 작품은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밀도있는 구성을 갖추면서, 규방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섬세한 정서를 잘 표출하고 있다. 바느질 용구들의 생김새나 쓰임새에 따르는 명칭이나 거동을 적실하게 묘사하는 데 발휘된 탁월한 글솜씨도 주목할 만하다.
작가는 자기 공을 내세우느라고 남을 헐뜯는 것을 능사로 삼는 등장인물을 통해 인정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동시에 작중 인물들의 그러한 행위가 세상 남성들의 억지스런 형태와도 자연스럽게 맞물리도록 하여, 여성의 입장에서 남성을 빈정대는 함축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 작품은 여성 취향의 소재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문방사우(文房四友)를 소재로 삼은 「모영전보(毛穎傳補)」나 「사우열전(四友列傳)」같은 남성 취향의 작품과는 반대의 위치에 놓인다.
형식에 있어서는 사람의 일생이나 국가의 흥망 같은 거창한 문제를 다루는 가전체의 형식을 빌리고 있다. 그런데도 한문이 아닌 국문으로 여성의 관심사를 흥미롭게 서술하여 가전체의 새로운 방향을 개척하려는 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다만 공감의 폭이 좁은 가전체의 한계를 벗어나기에는 미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