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조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영조의 둘째 아들로,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폐서인되어 뒤주에서 갇혀 사망한 후 정조에 의해 추존된 왕.
이칭
  • 이칭사도세자
  • 윤관(允寬)
  • 의재(毅齋)
  • 시호장헌(莊獻)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762년(영조 38)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735년(영조 1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범 (전 인간문화재,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7월 13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영조의 둘째 아들로,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폐서인되어 뒤주에서 갇혀 사망한 후 정조에 의해 추존된 왕.

개설

이름은 선(愃).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관(允寬). 호는 의재(允寬). 영조의 아들로 어머니는 영빈이씨(映嬪李氏)이며, 부인은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딸인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복형인 효장세자(孝章世子)가 일찍 죽고 영조의 나이 40세가 넘어서 출생한 탓으로 2세 때 왕세자로 책봉되고, 10세 때 혼인해 곧 별궁에 거처하였다.

그는 나면서부터 매우 영특해 3세 때 이미 부왕과 대신들 앞에서 『효경』을 외우고, 7세 때 『동몽선습』을 떼었다. 또한, 글씨를 좋아해서 수시로 문자를 쓰고 시를 지어서 대신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10세 때에는 이미 정치에 대한 안목이 생겨 집권 세력인 노론들이 처결한 바 있는 신임사화를 비판하기도 하였다.

1749년(영조 25)에 부왕을 대신해 서정(庶政)을 대리하게 되자, 그를 싫어하는 노론들과 이에 동조하는 계비(繼妃) 정순왕후 김씨(貞純王后金氏), 숙의 문씨(淑儀文氏) 등이 영조에게 그를 무고하였다.

성격이 과격한 영조는 수시로 세자를 불러 크게 꾸짖으니 마침내 그는 격간도동(膈間挑動)이라는 정신질환에 걸렸다. 함부로 궁녀를 죽이고, 여승을 입궁시키며, 한 나라의 서정을 맡고서도 몰래 왕궁을 빠져나가 평양을 내왕하는 등 난행과 광태를 일삼았다. 그 병의 증상에 대해 그의 장인인 홍봉한은 “무엇이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병이 아닌 것 같은 병이 수시로 발작한다(無可指之形 非病而病 作歇無常).”고 하였다.

1761년에 계비 김씨의 아비인 김한구(金漢耉)와 그 일파인 홍계희(洪啓禧) · 윤급(尹汲) 등의 사주를 받은 나경언(羅景彦)이 세자의 비행 10조목을 상소하였다. 영조는 마침내 나라의 앞날을 위해 세자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그를 휘령전(徽寧殿)으로 불러 자결을 명하였다. 하지만 세자가 끝내 자결을 하지 않자, 그를 서인으로 폐하고 뒤주 속에 가두어 8일 만에 죽게 하였다.

장조가 죽은 뒤 영조는 그에게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리고, 장례 때는 친히 나아가 스스로 신주(神主)에 제주(題主)를 하면서 나라의 앞날을 위해 부득이한 조치였음을 알리기도 하였다. 그의 아들인 정조가 즉위하자 장헌(莊獻)으로 추존되고, 1899년에 다시 장조(莊祖)로 추존되었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선원계보(璿源系譜)』

주석

  • 주1

    : 眞宗으로 추존됨

  • 주2

    : 결정하여 조처함. 우리말샘

  • 주3

    : 여러 방면에 걸친 정사(政事). 우리말샘

  • 주4

    : 제왕이나 재상, 유현(儒賢) 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 우리말샘

  • 주5

    : 신주(神主)에 글자를 씀.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